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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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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글세대는 논리어에 어둡다는 어느 교수의 연구발표가 있었다. 논리어란 이성(로고스)에 기초를 둔 과학적 추리에 필요한 언어를 말한다. 이것은 감성(파이도스)에서 우러나온 정서어와는 대조적이다.
철학이나 사회과학 또는 자연과학은 조리 있게 사고하는 논리어를 기초로 하고 있다.
정서어는 물론 예술을 구사하는 언어의 기초가 된다.
한글세대가 이런 언어의 구사에 있어서 당혹하는 것은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한 경우다. 한자의 이해 없는 한글만의 표기는 우선 그 용어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의미에 접근할 수 없어 혼란은 필연적이다.
한글만의 표기가 가능한 경우는 토속어를 쓸 때다. 그러나 토속어야말로 정서어가 대부분이다.
근대의 학문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이미 모든 용어는 한자에서 비롯되었다. 토속어는 대중적인 표현 수단이기 때문에 고도의 논리를 추구하는 학문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영어의 경우를 보아도 논리어와 정서어는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 논문을 쓸 때 소설 쓰듯이 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영어에 포함된「앵글로-색슨」어는 토속어의 수준으로 정서적 분위기가 강한 언어다.
역시 영어 속에 포함된「라틴」어는 철학·종교·사상 등을 표현해온 논리어다. 오늘날 영어 속의 정서적인「앵글로-색슨」어는 거의 사위 되다시피 했다. 겨우 20%정도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영어의 주류는 말하자면 한자 격인「라틴」계 논리어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그 교수의 보고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경우 논리어로 서술된 서적들은 경원시 되고 있는 경향이라고 한다. 논문작성의 경우를 보아도 과학적 추리를 필요로 하는 내용을 서정어로 서술하고 있어 논리성이 박약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글만 배운 세대들은 조리 있게 사고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생각하기보다는 느끼기를 좋아하고, 냉담하기보다는 감정적이기를 좋아하는 경향은 의식의 평형을 이루는데도 문제가 된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논리어만의 추구도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학자적 사고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논리어와 정서어의 균형에 있다. 우리는 일상어 마저 논문을 읽듯이 이런 용어를 구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언어생활은 한글과 한자의 균형이 바람직스럽다. 오늘날 한자의 교육마저 게을리 하는 언어교육은 언어의 절름발이를 면키 어렵다. 한글날에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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