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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이권 다툼 점입가경…'油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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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라크전이 끝나면 이라크의 엄청난 석유이권은 어디로 갈까.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전 세계의 11%에 해당하는 1천1백25억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제2위다. 생산비도 배럴당 0.5~1달러에 불과해 미국 텍사스의 20달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다.

현재 많은 전문가는 미국.영국 등 동맹국이 승전할 경우 이들 국가가 이라크 소유의 유전 개발권은 물론 프랑스 등 기득권 국가의 권리까지 차지하겠다고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강대국인 기득권 국가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적게는 수천만달러에서 많게는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이권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후 유전 개발권을 둘러싼 열강의 이해 다툼이 국제사회를 갈등과 분열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외국의 유전 개발권 보유 현황=이라크 내의 유전 개발권을 갖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세 곳이다.

프랑스의 석유업체 토탈피나 엘프사가 남부의 마즈눈 유전(매장량 1백20억~2백억배럴)과 나흐르 우마르 유전(매장량 40억배럴)의 개발권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루코일사도 이라크 남부의 웨스트 쿠르나 유전(매장량 1백10억~1백15억배럴) 개발권을 갖고 있다. 또 자루베즈네프트사는 북부의 키르쿠크 유전 개발권을 따 낸 상태다.

중국석유천연가스공급 집단공사는 바그다드 남쪽 알아흐다브 유전 개발권을 따 놓았다.

◆미국의 유전 개발권 획득 방법=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최근 기획기사에서 미국이 전후 이라크 유전 개발권을 챙기는 데 3단계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

먼저 이라크를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의 연방정부로 만든 다음, 새 정부로 하여금 외국 기업과의 기존 계약의 무효화를 선언케 하고, 새로운 유전 개발 계약을 위한 국제 경쟁입찰을 유도해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유전 개발권을 따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당수 이라크 반체제 조직들은 "이라크 해방에 공헌한 나라에는 특혜를 주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집권세력에 정치적으로 가까운 텍사스주 여러 석유회사의 이름이 전후 이권 개입 기업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요미우리 신문은 전했다.

일본 미쓰비시(三菱)종합연구소는 미국이 일단 유전 개발권을 챙기고 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들의 카르텔 무너뜨리기' 전략을 통해 국제 유가를 미국 측에 유리하게 조정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기업들이 이라크 유전을 확보해 현재 20%에 이르는 사우디아라비아에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게 되면 증산.감산정책을 적절히 활용해 OPEC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이란.리비아 등이 석유를 영향력 행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작된 유전 개발권 쟁탈전=이라크 전쟁 후 미국.영국 등 동맹국들의 기득권 침해를 우려해온 프랑스 등은 그동안 총력을 기울여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자 이제는 국제법과 상거래 관행을 앞세워 전후의 권리 보호에 나서고 있다.

빅토르 흐리스텐코 러시아 부총리는 지난 25일 "러시아 정부는 이라크에 있는 러시아의 이익을 지킬 것"이라며 기득권 침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혔다.

석유 전문가들은 이라크 유전 개발권을 잃게 될 경우 러시아의 손실 규모가 20억달러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러시아의 대 이라크 첨단무기 지원 여부를 놓고 미.러 정상 간에 벌어진 설전은 기득권을 침해당할 경우 미국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 수위를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는 현재 이라크와 70억달러 규모의 유전 개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라크의 새 정권이 기존 유전 개발권을 무효화할 경우 가장 큰 손해를 볼 전망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종전 이후 이라크의 새 정부가 과거 계약의 무효를 선언하더라도 이에 승복하지 않고, 국제법상의 관례를 적용해 기득권을 강력히 주장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동맹국인 영국도 미국의 독식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영국 정부는 최근 미군이 이라크 내 기지 이름을 '엑손' 등 미국 석유회사들의 상호로 명명하자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 측에 불쾌한 심사를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전 개발권을 둘러싼 이해 다툼이 동맹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마저 점쳐지는 상황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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