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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총선과 사민당의 노후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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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3일의 총선 결과 서독 사회민주당은 집권경쟁에서는 승리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수모를 당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비록 정권유지는 가능하게 되었지만, 야당과의 득표율의 차이는 불과 l.9%로 좁혀졌고 의석수도 45석 차에서 8석 차로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민당이건 기민당이건 그 어느 편도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을 향해『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뚜렷하고 신통한 대답을 제시하는데에는 똑같이 실패했다. 이는 요컨대 사회민주주의자이건 보수주의자이건 오늘의 서독 정치「엘리트」들이『고도성장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청신한「비전」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오늘의 서독 국민들이「유럽」제일의 성장과 풍요와 안정을 누리고 있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일반 노동자들까지도 아담한「마이·홈」과「마이·카」를 향유하면서 다음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유일한 고민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서독이나「스웨덴」등 오늘의 고도산업사회 국민들은 무엇인가『그 이상의 것』을 희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포르투갈」같은「유럽」후진국의 경우는 예외로 친다하더라도, 서독과 같은 고복지·고성장 사회에서는 풍요시대의 산물인『안락한 중산층』이 점차 기성정치「메커니즘」의 관료주의에 반발을 느끼는 계층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신보수주의적 요구는 결국『보다 많은 개인의 활동 영역』과『질적으로 보다 세련된 안락과 보다 축소된 공공 지배』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뉴·딜」정책 이래 구미 각국에서 줄곧 계속되어온 정부관여도의 확대에 대한 반발이다. 사실상 1930년대 이후 보수주의정권이든, 사회민주정권이든 사적영역에 대한 공공지배의 진폭을 끊임없이 확대해 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 결과 공황이 극복되고 복지와 성장과 분배가 촉진되었다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또 서독 사민당은 특히「유럽」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파제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풍요한 고성장 사회를 이룩하고, 동방정책이나「마르크」화의 안정화라는『뜨거운「이슈」』가 사라지고 난 지금에 있어 서독 사민당은 이미 청신한 발전의 기수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시대는 그만큼 흘러갔으며 사민당은 더 이상 젊은 세력으로 남아있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킬「공동결정제」나「투자통제법안」등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 중산층이나「블루·칼러」들에게도 오히려「창의력의 위축」이라는 인상을 주는 면이 없지 않았다. 국민이 보기에 사민당은 이미 발전 지향적 새 세력으로서보다는 정체한 구세력으로 간주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때문에 18∼20세 청년유권자들마저도 대거 사민당을 이탈했다. 비단 서독의 경우뿐만 아니라「유럽」사민 계열 일반은 이제 분명히 경직돼 있고 노후화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80년대를 바라보는 현대 서구인들의 내적인 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갈망은 물량적 풍요의 복지사회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보다 질적인 인간실현에의 원망이다. 이 꿈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한 사민당의 경제주의적 노선은 유권자의 환멸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는 상승세의 보수진영도 최선의 대안이라기 보다는 최저의 대안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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