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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차는데 "선실 대기" 방송 … 구조현장 어른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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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탑승객 김홍경씨가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 기울어진 세월호 갑판에 승객들이 매달려 있다. [사진 김홍경]

6825t급 대형 여객선 세월호는 왜 그렇게 빨리 침몰했을까. 또 대규모 구조단이 출동했는데도 281명(17일 오전 0시30분 현재)이나 구하지 못한 걸까. 정부는 일단 큰 충격으로 인해 배밑이 파손돼 선체가 기울어지면서 침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선체가 급격히 기울면 동력과 전원이 일시에 끊겨 ‘데드십(dead ship)’ 상태에 이르고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변보다 수심 낮아”=세월호의 침몰에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좌초됐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최초 충격이 발생한 지 불과 15분 만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해군의 한 전문가는 “세월호는 국내 최대 여객선 중 하나로 침수가 돼도 부력을 유지하며 4∼5시간 떠 있는 게 일반적”이라며 “그러나 이번처럼 빠르게 침몰한 데는 뚫린 부위(파공 부위)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물이 급격히 들어차 균형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둘째 가능성은 물이 들어오며 선체 하부의 화물칸에 실렸던 자동차 등이 한쪽으로 쏠려 순식간에 선체가 옆으로 무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경우 옆에 있어야 할 출입문이 위와 아래에 있게 돼 승객과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강재경 경기해난구조대장은 “6000t이 넘는 배가 암초에 부딪히면 달리는 관성 때문에 바로 서지 않고 부딪힌 채로 끌려간다. 그러면 최고 50m까지도 선체가 찢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체 왼쪽이 갑자기 기울어졌다는 생존자 증언을 종합해볼 때 암초에 부딪혀 배의 좌현이 크게 찢어지면서 순식간에 침수됐을 가능성이 크다. 구조된 강인환씨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으로(좌현) 60도 정도 기울었고 물이 점점 차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90도까지 기울어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앞쪽(선수)부터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울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배밑이 길게 찢어지면서 배 안의 격실 공간이 연달아 침수되면서 배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진 것으로 보인다. 배 한쪽의 부력이 빠르게 소실되면서 급속히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이곳은 원래 암초 지역이 아니지만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데다 수심이 얕아 기존에 파악하지 못한 장애물(암초)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파고가 1m였고 바람도 초속 4~6m 수준이어서 기상은 나쁘지 않았다. 해무가 있었지만 가시거리는 2해리(3704m)였다.

 선박 전문가들은 1차적 원인이 폭발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했다. 서울대 박용안(해양학과) 명예교수는 “엔진실에 폭발물이 장착돼 있지 않는 한 폭발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폭발 소리나 연기, 냄새, 불길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없다.

 ◆안개 때문에 늦게 출발=사고 발생 후 일각에선 “사고 지점인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해상은 인천~제주 간 권고 항로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익명을 원한 전직 SSU 구조대장은 “베테랑 선원이 있고 GPS 시스템이 있는데 항로를 벗어났다는 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안개 때문에 늦게 출발한 배가 도착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임의로 항로를 변경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구조된 한 학생은 “원래는 (사고 전날) 15일 오후 6시30분 출발이었지만 안개가 끼었다고 해서 9시에 출발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익명을 원한 한 항해사는 “항로를 벗어났다기보다는 병풍도 바깥 남쪽을 지나는 권고 항로를 택하지 않고 15마일(30분) 정도 단축할 수 있는 병풍도 북쪽 항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 회사인 청해진해운은 항로 이탈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배가 낡은 것도 침몰을 앞당긴 원인으로 꼽힌다. 1994년 만들어진 세월호는 노후한 배로 분류된다.

 ◆“구조 안내요원 없었다”=구조됐지만 코뼈가 부러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의 한 학생은 “충격이 있고 한 시간이 지나 헬기가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선실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근처에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고 전했다.

 배가 파손돼 일부 선실에선 침수가 진행되는데도 안전 요원의 유도 없이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안내방송만 한 게 오히려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구조된 한 학생은 “배가 기울어져 물이 차기 시작했는데도 오전 10시가 지나도록 방송에선 그 자리에 있으라고만 했다. 그대로 있으면 죽을 거 같아 친구들과 선반에 있는 구명조끼를 꺼내 입었다”고 전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안내방송은 6~7회 반복됐다. 일부 학생은 안내방송만 믿고 안전요원의 안내를 기다렸다가 물이 차 탈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고 신고가 늦었다는 주장도 있다. 구조된 한 학생은 “쿵 하는 소리가 나고 자판기가 다 쓰러져서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30분인가 40분인가 그랬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구조 요청을 한 것은 이보다 15분이나 늦은 8시55분이었다. 구조를 담당한 해경엔 8시58분 공식 신고가 접수됐다.

강인식·민경원·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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