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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일삼는 조총련 마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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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경=김경산특파원】부모와 함께 조총련 모국성묘단원으로 고향에 가려던 강영희양(14·일본명 서산영자·대궁조선초중급학교중등부2년)은 조총련계 담임선생에게 납치되어 만 하루만에 풀려났으나 끝내 모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나이어린 가슴에 깊은 멍이 들었다. 영희양은 꼭 24시간을 끌려 다니며 협박과 시달림을 받아 신경쇠약 증세마저 보이고있다. 안정을 위해 친척집에서 보호, 간호를 받고 있어 영희양이 당한 조총련의 비인도적 처사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가족들과 재일 거류민단관계자들이 밝힌 영희양 피납사건의 시말은 다음과 같다.
사건 당일인 2일 영희양은 마침 방학중이어서 성묘단 1백여명과 함께 하오5시30분 동경 「하에다」공항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부모·오빠 동생 등 5명과 함께 하오3시30분쯤 공항에 도착했다.
2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공항에 도착한 영희양과 가족들이「로비」에 들어가려는 순간 출입구에서 담임선생 장한일이 나타나『할말이 있다』며 다가섰다. 7, 8명의 낯선 얼굴도 장의 주위에 있었다.
가족들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순식간에 영희양과 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심장치 않음을 직감, 환승차 공항에 나와있던 재일 거류민단측 사람들과 상의를 했다.
「하에다」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아 납치된 지 불과 몇 분이 되지 않아서 경찰에 『영희를 찾아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소동에 가족들은 예정비행기를 포기하고 공항에 자리잡은「하에다·도오뀨·호텔」에 일단 여장을 풀 수밖에 없었다.
민단관계자들도 공황과「호텔」로 달려가 대책을 숙의했다.
하오9시쯤 일본경찰에서 영희양의 행방에 대한 첫 전화를 걸어왔다.
「호텔」에 있던 부모에게『집에 가있다』는 전화이었다.
부모와 영희양이 통화을 했으나 영희양은 곁에 선생이 지키고 있어 그랬는지 『집에 있으니 그렇게 알라』는 간단한 말밖에 없었다.
영희양은 공항에서「택시」로 1시간20분쯤 걸리는 기옥현대궁시삼호에 있는 집에 끌려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조총련은 앞으로의 문제 때문에 영희양을 일단 집으로 데려간 것으로 보였다.
결국 풀려날 것이 불가능 할 것으로 판단되어 큰오빠 강박사씨(30·일본명「니시야마· 희로시」) 와 민단 국제국장 김정주씨 및 민단청년대원 8명이 집으로 영희양을 찾아 나서기로 하고 하오11시40분쯤 공항을 떠났다.
이에 앞서 하오11시20분쯤 영희양의 아버지는 딸과 통화, 『아무 소리말고 집에 있어라. 오빠가 가니 말대로만 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영희양은『무섭다』며 친구 5,6명과 함께 있다고 말했다.
큰오빠 등이 집근처 삼호파출소에 도착한 것은 3일 정오1시쯤이었다.
이때 파출소 주위에는 10여명의 낯선 젊은이들이 서성대다가 일행이 도착하자 대기해두었던 자동차 3대에 나누어 타고 사라졌다.
조총련계임이 분명했다. 오빠 등 일행이 파출소에 들어가자 주임은『사건은 알고있다』고 했으나 『본서에서 지시를 못 받았다』며 비협조적이었다.
일행은 곧 영희양이 있다는 집으로 갔으나 영희양은 이미 일행도착 1시간 전쯤 어디론지 끌려가고 없었다. 틀림없이 학교로 간 것으로 믿은 일행은 일단 대궁경찰서에 들렀다가 학교로 가기로 했다.
대군 경찰서 관계자들은 심문조로 『왜 왔느냐』라고 물었다.
경찰서에서 3일 상오2시20분께까지 40분이나 시간을 끌었다.
경찰은 『학교에는 혼자만 가라』고 종용, 오빠 혼자 학교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나머지 일행도 오빠의 신변을 우려,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 갔다.
학교정문에서『영희야』하고 큰소리로 외치기 수십번, 시간은 4시30분이 가까왔으나 응답이 없었다.
오빠는 교문을 넘어 들어가려 했으나 같이 간 경찰은『불법이다. 거꾸로 당신이 걸린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일행은 영희양 찾기를 포기하고 상오 6시50분「하에다」공항으로 돌아왔다.
오빠 혼자서 다시 학교에 간 것은 하루가 지난 3일 상오9시. 오빠가 학교로 떠나기 전 하루 늦었지만 예정대로 하오1시30분발 비행기로 한국에 떠나기로 한 아버지 등 가족 5명은 『영희를 안정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오빠에게 간단히 부탁했다.
영희양은 교감·선생들과 함께 오빠와 상오10시 학교 교무실에서 납치 후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오빠와 학교측이 승강이를 벌이기 장장 6시간이었다. 영희양은 가까스로 하오4시 오빠 품에 돌아와 친척집으로 갔다.
영희양이 어디서 자고 어떤 경로로 납치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주일한국대사관측은 영희양의 친척으로부터 『풀려났다』는 전화연락을 받았으나 영희양이 극도의 피로에 겹쳐 신경쇠약증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외부접촉이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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