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에 희생된 한국인 5천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동경=김경천 특파원】오는9월1일은 일본관동 대지진이 발생한지 53년째 되는 날이다. 동경· 「요꼬하마」등 관동지역에서 진도 7·9의 지진이 발생,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이날은 특히 한국인들에게 한맺힌 날이다.
1923년 대지진이 일어나자 이른바「선인습내」라는 유언비어가 동경근처에서 삽시간에 퍼졌고 이때문에 죄없는 한국인 5헌여명이 일본사람들의 손에 은갖 참혹한 방법으로 학살당했다.
그런데 동경상야공원에있는 일본국회도서관 창고에서 단행본·「팸플릿」등 대지진에 관한 77점의 새로운 자료가 자난 22일 53년만에 발견됐다.
이 자료중에는 한국인의 학살사건 원흉이기도 한「선인습내」의 진상을 파헤친「유언의 진상」이라는 소책자가 들어있다.
지진이 발생한지 한달후인 10월9일 「제도 부흥협회」가 발행한 이 책자는 한국인들이『우물에 독약을 뿌렸다』『민가를 습격,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했다』『「다이너마이트」폭탄으로 화재를 일으키고있다』는 풍문의 진상을 현지 조사한결과 유언비어로 확인되었고,
한국인들이 무고하게 일인자경단의 손에 죽어갔다고 밝히고있다.
그러나 발행과 동시에 계엄령으로 발매가 금지된 이 책자는 특히 일본사람의 손으로 진상을 파헤쳐「일본사람은 선량한 선인을 너무도 몰랐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 특색인데 계엄 검열때문인지 원본에는「선인」이라는 글자가 거의 지워져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동경에서 처음 유언비어가 터지기 시작한것은 지진이발생하던 날 밤부터였다.
지진으로 불바다가 되어 5만수천명의 목숨을 잃은 공포의 도가니속에서 갑자기 『공사에 종사하던 선인수백명이 두패로 나누어 각각 다른 방향에서 민가를 약탈하고 강간을 일삼으며 이재민을 습격하고 있다』는 풍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어서『탄약고를 습격한다』『수천명의 지방에 사는 선인들이 동경에 쳐들어오고 있다』『조선에서 선인응원단이 출발했다』 『조선에서 독립음모단이 폭동을 일으켰다』는등 풍문이 계속 퍼졌다.
이런 혼란속에서 계엄군과 경찰이 있었으나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 선인과 내통한다고 여겼던 사회주의자들을 박멸하기 위해 죽창· 일본도·권총·엽총·근봉 등을 마구 휘둘렀다.
책자「유언의 진상」은 『우리는 진상의 현지조사에 나섰다』고 기술하고 있다. 책자에서 『우리』는 제도복전협회의 회원들로 해석되는데 이들의 조사결과 선인습내설은 전부 유언비어임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유언비어속의 현장을 거의 전부 탐사한결과 황당무계한 풍문이 비극의 씨를 뿌렸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우물에 독약이 있을리 없었고, 폭탄을 들고 간다,는 한국인을 잡고보면 쇠고기 깡통을 들고있었으며 한국인들의 약탈·방화등을 뒷받침할만한 꼬투리를 잡으러해도 도저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