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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한 미국의 태도 변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판문점 도끼살인에 관한 북괴 김일성의 회답에 대한 미국정부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미국정부는 김의 회답을「유감의 표시」로 일단 긍정하는 듯 했다가 곧「수락할 수 없는 것」으로 공식 거부한지 24시간만에 또 다시 유감의 표시로 인정하는 긍정적 태도로 바꾼 것이다.
미국정부의 태도가 이렇게 갈팡질팡하게 된 동기를 지금 당장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김의 회답문답이 극히 불성실한데다 이 사건의 해결방식에 대해선거를 앞둔 정치적 고려와 전문가들의 외교적 견해가 상치한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밖에도 이번 사건에 관하여 혹 중공-소련 등 이 막후에서 모종의 작용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김의 회답만 놓고 보면 사건발생 자체에 대한 유감이 표시됐을 뿐 살인에 대한 책임의 인정이나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뻔뻔스럽게도 이번 사건을「유엔」군 측의 도발에 대한 자위행위인양 억지를 늘어놓고 있다. 아무리 대외적 용어 선택에 있어 책임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용어는 피하는 것이 보통이라 하더라도, 김의 회답은 본질적으로 종래의 그들의 후안무치한 역 선전적 주장을 넘지 못한 것이다.
구태여 어떤 의미를 찾는다면 휴전 후 23년만에 처음으로 형식적이나마 김일성이 직접 회답을 보냈다는 사실뿐이다.
물론 김이 형식적이나마 회답을 보냈다는 것은 앞으로 북괴를 다루는데 시사하는바 적지 않다.
우선 그 회답이 전달된 시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미 연합군에 의한 미류나무 절단작전이 수행된 지 4시간 후 북괴 측 요청에 의해 갑자기 마련된 군사정전위 양측 수석대표간의 모임에서였다.
그 작전 수행당시 하늘에는 26대의「건쉽·헬리콥터」·F-4「팬텀」및 F-111전폭기·3대의 B52 중폭격기 등 이 겹겹이 선회하고 있었다. 바다에선「미드웨이」항 모를 주축으로 한 미제7함대의 기동부대가 한반도해역으로 항진 중이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외곽에는 완전 무장한 3백 명의 한미연합군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강력한 힘의 시위 속에서 미류나무 절단작전이 전격적으로 수행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철부지 북괴라도 이같은 강력한 무력의 시위 앞에 감히 도전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가지를 친다고 도끼로 2명의 미군 목숨을 앗아갔던 흉 폭한 북괴군이 나무 밑 둥을 완전히 잘라 내는 대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 저항이 없었을 뿐 아니라 허겁지겁 김의 회답까지 보내 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공산주의자들을 다스리는 수단은 힘밖에 없다는 것을 웅변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고 은인자중 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미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과의 대결에선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들을 다스리겠다는 강한 의지와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힘은 있지만, 무른 태도를 취했던 미국이 작년「인도차이나」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수치를 당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강력한 힘의 과시가 효과를 보고 있는 이 시기에 미국은 좀더 불퇴전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 기회에 방자한 북괴의 버르장머리를 철저히 고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 결정적 시기에 미국이 강력한 힘의 응징자세를 늦추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그 경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북괴를 고무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미국의 뒷심 없고 무른 면만 보여 북괴의 도발과 역선전이 격화될까 걱정스럽다. 한미 양국정부는 힘과 강력한 응징의지만이 북괴를 침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고 대처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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