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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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브라질」 정부는 한참동안 유통되던 1「크루제이로」짜리 지폐를 1960년부터 찍지 않기로 했다. 액면이 l「크루제이로」인데, 제작비는 1·2「크루제이로」나 든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낸 것이다.
지폐는 아무리 고액권이라도 제작비가 싸야한다. 가령 우리 나라 5백원권의 경우 인쇄비와 종이값만을 친다면 한장에 5원도 먹히지 않는다.
이게 천원권이라고 곱절이나 먹히게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나 위조지폐는 나돌아도 위조주화는 별로 나돌지 않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5백원권 위폐가 53장이나 발견되었다. 기왕이면 5천원권이나 1만원권을 위조할만도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어느 지폐에나 수염이 긴 노인상이 들어있다. 5백원권엔 충무공, 천원권엔 퇴계, 5천원권엔 율곡, 만원권엔 세종대왕이 각각 그려져 있는 것이다. 수염은 그만큼 위조하기가 어렵다고 보는 때문이다.
그리고 고액권일수록 도안이 더 정교해진다.
또 하나 고액권일 때는 돈을 받는 사람들이 더 경계심을 갖게된다는 흠도 있다. 그래서 어느 위조범이나 시중에 많이 유통되는 지폐를 고르는게 보통이다.
지난 74년 봄에 영국에서 세계최대의 위폐조직이 검거된 적이 있다.
이틀이 찍어낸 위폐의 총액은 1천만「파운드」에 이르렀지만, 모두 1「파운드」짜리였다.
위조지폐가 진짜와 같아지려면 우선 시설이 좋아야한다. 그만큼 밑천이 많이 든다. 따라서 밑천을 뽑으려면 되도록 많이 찍어내야 한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히틀러」는 영국의 경제를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파운드」를 위조하려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때 만들어 낸 위폐는 진짜와 거의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했다. 물론 수지는 전혀 맞지 않는 장사였다. 다행히 위폐가 나돌기 직전에 「히틀러」는 망했다.
이번 5백원 위폐범들도 사뭇 조직이 큰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오프셋」 인쇄기 한대 값이 5백만원은 넘는다. 여기에 사진제판시설·도안 제작비 기타를 합치면 적어도 1천만원의 밑천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밑천을 뽑으려면 적어도 3만장의 5백원권을 뿌려야한다. 몇 사람만으로는 도저히 해내지 못하는 범죄다. 이번 위폐는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 나돌던 것 중에서는 가장 정교하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네 인쇄기술이 발달했다는 얘기일까. 범죄가 지능화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필이면 그렇게 수지 맞추기 어려운 범죄를 왜 저질렀을까하는 의문이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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