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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게 간 고기·야채 파 기름에 달 달 달 짜장 입에 감기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 ‘중국’의 짜장면. 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영업시간 전부터 기꺼이 줄을 서는 사람이 많다.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정호승 시인의 ‘짜장면을 먹으며’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의지가 되는 음식이라… 이렇게 멋진 헌사를 받는 음식이 우리에게 짜장면 말고 또 있었을까? 괴테는 인생의 고난을 얘기하면서 ‘눈물 젖은 빵’을 얘기했지만 우리는 ‘눈물 젖은 짜장면’이 그 역할을 대신해 왔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이 노래 가사 한 구절 때문에 눈물을 훔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짜장면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서 함께 해온 대표적인 소울 메이트(Soul mate) 음식이다.

짜장면을 먹을 때면 수많은 추억이 생각난다. 학교에 입학했다고 아버지가 처음으로 사주셨던 짜장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몰래 나가서 한 젓가락에 털어 넣었던 짜장면, 가슴 두근거리는 상대와 처음으로 마주 앉아서 촌스럽게 보일까 봐 마음 졸이며 먹었던 짜장면, 추운 겨울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시골 중국집에서 달게 먹었던 짜장면 등등. 이렇게 켜켜이 쌓인 추억들이 양념으로 뿌려지면서 짜장면은 언제 먹어도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추억을 곁들여 먹는 짜장면도 좋지만 그런 감성 양념을 제외하고도 객관적으로 맛있는 짜장면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보게 되었다. 주위 분들에게 소개도 받고 검색도 해보고 하면서 찾아 보았는데 역시 짜장면은 ‘제 눈에 안경’ 식으로 자신만의 감성이 담긴 맛을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헛걸음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찾아낸 곳이 청와대 부근 청운초등학교 옆에 있는 ‘중국’이라는 작은 중국음식점이다. 사장 겸 요리사인 문경철(48) 사장이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영업 방식이 독특하다. 그날 판매할 음식 재료를 아침에 준비해서 영업을 시작하고 그 재료가 모두 떨어지면 끝낸다.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30분인데 요즘은 오후 2시 이전이면 영업이 모두 끝난다. 이들이 이렇게 운영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남는 시간에는 재미있게 원하는 일을 하면서 놀러 다닌다. 부부가 함께 서예도 배우러 다니고 태극권도 한다. 근처 화랑을 돌아다니며 그림 공부를 하기도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자신들이 행복한 것이 중요하고, 자신들이 행복하면 만드는 음식도 더 맛있어지고, 그 음식을 먹는 손님들도 함께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유쾌한 사람들이다.

문 사장은 원래 중국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대만에 석사과정 유학을 갔다가 중국 음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유명 중국 음식점들에서 요리 수업을 받고 나름 경험을 쌓은 다음에 2001년에 자신만의 식당을 시작했다. 이분의 요리 철학은 한마디로 ‘최선을 다해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간 모아온 중식요리책이 무려 3000권이 넘는다고 한다.

모든 요리는 자신이 직접 만든다. 그날 그날 준비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면 반죽과 음식의 간을 다르게 하는 세심함까지 기울인다.

‘중국’에는 다른 중식 메뉴들도 있지만 나는 짜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유니짜장(肉泥炸醬) 스타일로 고기와 야채를 모두 잘게 갈아서 만든 소스는 먹기에 편하고 부드럽다. 전체적으로 고소한 맛이 많이 나는 것이 특징인데 다른 중국집에서는 귀찮고 복잡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 파 기름을 이용해 조리하기 때문에 그런 맛이 난다는 설명이었다. 단맛이 좀 강한 편이지만 입맛에 불편하지 않고 착 감긴다. 약간 싱겁고 재료에서 우러나오는 뒷맛이 좋아서 맛의 여운을 오래 느낄 수 있다. 조미료를 넣기는 하지만 재료의 맛을 덮지 않아 의식을 하지 못할 정도다.

적당히 쫄깃거리는 면발은 굵기도 적당하다. 먹고 나면 ‘아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중독성이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최고의 짜장면이 있다. 그 맛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어차피 불가능하다) 이 정도 수준이면 현재를 사는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4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짜장면이어서 더 맛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래 저래 짜장면의 맛은 감성이 중요한 모양이다.

**중국 :서울 종로구 청운동 59-4 전화 02-737-8055. 일요일에는 쉰다. 영업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에는 쉴 새 없이 바쁘다. 전화로 방해를 안 해줬으면 하고 당부를 했다. 짜장면 보통 4000원, 곱빼기 50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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