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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영어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0호 31면

서울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을 나오면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건물들이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차이점이 있다. 건물에 달린 간판들이다. 이곳의 간판은 다 한글로 돼 있다. 외국계 체인점도 한글로 간판을 달고 있거니와 한국 기업 중 로마자로 된 상표를 쓰는 곳조차 그렇다.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주요 문화재인 경복궁과 사직단 사이에 위치한 동네여서 더욱 그렇다.

인상적인 건 한글뿐만이 아니다. 간판의 디자인도 세련되고 신선하다. 앞으로 서울의 거리를 미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 사례로 꼽고 싶다. 간판 개선 사업은 종로구가 지원한 ‘경복궁역 주변 길 간판 개선 주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최근 2년간 단계적으로 진행돼 왔다고 한다.

그러나 경복궁역 주변을 벗어나면 다른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판들이 등장한다. 영어를 비롯해 로마자를 주로 사용한 간판이다. 영어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프랑스어도 있거니와 아예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국적불명의 간판도 있다. 여기에 옛날식 한자 간판도 있는 터라 가히 ‘간판 문자의 짬뽕’이라 할 만하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현대 사회의 패러다임에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법으로 간판의 글자·디자인을 규제할 순 있겠으나 현대 사회 가치관에 비춰볼 때 이는 맞지 않다. 간판 개선을 위해선 경복궁역 지역처럼 상인들의 자발적 협력을 유도하면서 개선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다른 주장도 있다. ‘문자 짬뽕’ 간판은 오히려 창의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관을 고려한다는 의도로 도시 경관을 계획하는 것은 억지스러우며, 서울의 매력을 ‘문자 짬뽕’과 같은 복잡함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게 간판만 이런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다. 가게 안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문제다. 경복궁역 근처에 최근 개업한 가게 중엔 유독 카페들이 많은데, 이 중 많은 곳이 메뉴를 한국어·영어로 구비해놓고 있다. 심한 경우엔 모든 메뉴가 다 영어다. 명동·이태원처럼 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지역 카페의 주요 고객이 외국인은 아니다.

그럼 이 영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 상대가 있어야 의미를 가진다. 카페의 고객은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영어를 사용할 상대를 한국인 고객으로 설정한 것일까. 주한 외국인 중에선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꽤 많다.

결국 문제는 그렇게 쓰이는 영어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가 없는 언어는 장식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일종의 매너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영어 매너리즘’이 무엇을 반영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국제화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게 됐다. 90년대에 세계화를 외쳤고 이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글로벌화에 대한 열망으로 변했으며 2000년대 말에는 ‘다문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맥락에서 국제화는 선진적, 그렇지 않은 것은 후진적이다. 영어를 형식적으로라도 공부한 사람은 앞서가는 사람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뒤떨어졌다는 인식이 생긴다. 그렇기에 영어 장식을 한 가게는 멋지고 앞서가는 게 된다. 그 연장선에서 영어는 선진 언어, 한국어는 후진 언어라는 인식상의 구도가 형성돼 있는 듯하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고 분단된 국가인 한국에 국제화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디에나 균형은 필요하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기둥은 한국만의 문화이자 언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면 영어가 달리 보일 것이다. 외국인들에겐 한국다운 한국이 더 편하고 매력적이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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