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합숙 폐지' 귀 막더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꼭 3년 전인 2000년 2월, 본지는 유소년 축구 환경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제기한 '유소년 축구부터 바꾸자'시리즈를 보도한 바 있다. 시리즈 두번째 기사의 주제는 '합숙훈련 없애자'였다.

기사는 당시 전국 최강이던 서울 D초등학교의 예를 들었다. 이 학교는 조립식 숙소를 지어 3학년부터 6학년까지 25명을 1년 내내 합숙시켰다. 선수들은 토요일 오후 집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까지 돌아와야 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한 제목은 <구타.기합 등 폐습만 배우고 운동 외 무능한 '기형아'양산, 지도자.학부모 "성적 제일"에 개성무시 통제위주 집단훈련>이었다. 기사는 '자발적으로 합숙을 없애지 못한다면 교육부나 축구협회가 앞장서 엄격히 금지시켜야 한다'로 끝을 맺었다.

당시 이 기사가 나간 뒤 대한축구협회 조중연 전무는 "합숙을 없애는 방향으로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합숙을 폐지했다는 학교의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지난 27일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가 나자 그제서야 대한축구협회는 초등학교 합숙소를 폐지하는 방안을 교육부와 일선 학교 등 관계 기관에 적극 권장하기로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럴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써야 하는가. 문제는 잃은 게 가축이 아니라 안정환.이영표를 꿈꾸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고 다시 한번 외친다.

"제발 합숙을 없애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정말 웃으면서, 즐기면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해 달라. "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