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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쪼달리면 찌들리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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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부귀한 때는 벗이 많이 모이지만 가난해지면 하나도 남지 않는다’. 영국 속담이다. 그래서 ‘어려울 때 친구가 참된 친구다’는 속담도 나왔나 보다. 가난은 죄악이 아니지만 매우 불편한 것만은 사실이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시달리거나 부대끼어 괴롭게 지내는 것을 이르는 말로 ‘쪼들리다’가 있다. 이 ‘쪼들리다’를 ‘쪼달리다’로 쓰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평범한 주부가 카드빚에 쪼달리다 못해 대낮에 흉기로 금은방 주인을 찌르는 강력범죄를 저질렀다.” “가뜩이나 쪼달리는 생활 속에서 국민들이 증세에 찬동하겠는가.” 이처럼 ‘쪼달리다’로 잘못 사용하는 까닭이 ‘쪼들리다’보다는 ‘쪼달리다’가 양성모음 끼리 모여 있어 발음하기가 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파(世波)에 시달리거나 부대끼어 괴롭더라도 ‘쪼달리다’가 아니라 ‘쪼들리다’가 바른말이니 “군색한 살림에 쪼들려 꿈이고 뭐고 다 날아가 버렸다”처럼 ‘쪼들리다’를 써야 한다.

 ‘쪼달리다’와 비슷하게 많이 오용되는 단어가 ‘찌들리다’이다. “완벽해 보이는 프로방스에도 구질구질한 뒷골목이 있고, 카메라를 들고 몰려다니는 관광객들 뒤로 생활에 찌들린 농부나 소시민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테다.” “찌들리고 병든 삶에서 건강하고 풍성한 삶으로!” 이렇게 쓰이는 ‘찌들리다’는 ‘찌들다’를 잘못 쓴 것이다. ‘찌들다’는 ‘좋지 못한 상황에 오랫동안 처하여 그 상황에 몹시 익숙해지다’ 또는 ‘물건이나 공기 따위에 때나 기름이 들러붙어 몹시 더러워지다’는 뜻이다.

 ‘찌들다’는 그 자체로 자동사이므로 피동을 뜻하는 ‘-리-’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찌들린’은 ‘찌든’으로, ‘찌들리고’는 ‘찌들고’로 쓰는 게 정확하다. ‘먼지와 땀에 찌들은 옷’도 ‘먼지와 땀에 찌든 옷’이라고 적어야 맞다.

 ‘가난의 괴로움을 면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기의 욕망을 줄이는 것으로,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지만 후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가짐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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