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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살 없는 글쓰기 어렵죠? … 그 방법 알려주는 책 있다던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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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미국에서 작가·언론인·학생이 활용하는 각종 어법 매뉴얼.

‘ … 에서의’ ‘…으로부터의’ 같은 일본식 표현은 안 쓰는 게 좋다. 격조사 ‘의’ 자체가 불필요하게 등장하지 않아야 글이 더 힘차고 우리말답다. “여기서 지적돼야 할 것은 …” 같은 영어식 피동문도 문제다. 누구나 읽고 공부해야 하는 표준 글쓰기 도서가 있다면 우리 언어생활이 보다 질서 있게 될 것이다. 지켜야 할 규칙은 잘 지켜 글의 가독성(可讀性, readability)이 높아지면 소통도 쉽고 글 읽는 재미도 풍성할 것이다. 우리에겐 아쉽게도 글쓰기 표준서가 없다.

 미국에서 글쓰기 원칙의 표준 구실을 하는 책은 『문체의 요소(The Elements of Style)』(1918·1959, 이하 『문체』)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도 인기가 높아 10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 책에 대해 미국 작가 도로시 파커(1893~1967)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작가가 되겠다는 젊은이를 친구로 뒀다면 ‘두 번째 가는 호의’는 『문체』를 선물하는 것이다. 최고의 호의는 아직은 행복한 그를 지금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다.”

 『문체』는 파커가 극단적인 수사로 표현한 글쓰기의 고통을 얼마간 덜어준다. 『문체』가 태어난 경위는 이렇다. 원저자는 미국 코넬대 영문학 교수였던 윌리엄 스트렁크 2세(1869~1946)다. 스트렁크 교수는 1918년 43쪽짜리 『문체』를 자비로 출판했다. 학생들이 써낸 에세이를 고쳐줄 때 일일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였다. 예컨대 불필요한 피동형 문장이 발견되면 “‘작문 원칙 14(능동형을 사용하라, Use the active voice)’를 참조할 것”이라고 학생 제출물의 여백에 써주면 그만이었다(영어 글쓰기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문체』는 피동형을 피하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말 글쓰기에서 피동형이 자주 보이는 것은 얄궂은 일이다).

 1919년 스트렁크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학생 중에는 엘윈 브룩스 화이트(1899~1985)가 있었다. 스트렁크 교수는 수업 중 귀가 따갑게 같은 말을 연거푸 강조했다. 이렇게 말이다.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라(Omit needless words).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라.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라.” 미국 문학사에서 화이트는 『문체』가 낳은 대표적인 수혜자였다. 스트렁크 교수의 수업을 듣기 전에 화이트는 영어 수업에서 D학점을 받는 ‘문제 학생’이었다. 『문체』 덕분에 글쓰기 가닥이 잡힌 화이트는 불필요하거나 부주의한 문장을 찾아보기 힘든 깔끔한 문장을 쓸 수 있게 됐다. 화이트는 1925년부터 고급 주간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칼럼니스트로 필명을 날렸다. 어린이 소설 『스튜어트 리틀(Stuart Little)』(1945)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1952)은 지금까지 5000만 부 이상 팔렸다. 졸업 후 36년이 지난 1957년 화이트는 ‘뉴요커’에 『문체』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대박’을 감지한 출판사가 개정증보판 집필을 화이트에게 의뢰했다.

『문체의 요소』의 영문판(왼쪽)과 한글판 표지.

 『문체』에는 영어 어법(usage) 규칙 11가지, 작문 원칙 11가지, 문체에 대한 접근법 21가지가 나온다. 영어로 글 쓸 일이 있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문체』를 훑어보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말 글쓰기에 적용할 만한 것도 많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문장에는 불필요한 단어가 없어야 하고 단락에는 불필요한 문장이 없어야 한다(A sentence should contain no unnecessary words, a paragraph no necessary sentences)’ ‘모든 단어가 말하게 하라(Make every word tell)’.

 이처럼 『문체』는 군살 없는 글을 지향한다. 우리말 글쓰기에서 자주 눈에 띄는 ‘군살’은 불필요한 반복이다. 글의 얼개를 잘 짜면 한 가지 내용은 한두 번 나오는 것으로 족하다. 구성이 잘못되면 여러 번 나오게 된다. 중언부언(重言復言)의 원인은 주장을 강조하고 싶은 욕구, 주장이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불안의 징조 중 하나는 수식이 많은 것과 설명이 길게 늘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체』는 이렇게 말한다. ‘명사와 동사로 글을 써라(Write with nouns and verbs)’ ‘지나치게 설명하지 말라(Do not explain too much)’.

 ‘단락을 작문의 단위로 삼으라(Make the paragraph the unit of composition)’는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단락은 읽기 편하라고 떼는 게 아니다. 단락 한 개에는 중심적인 아이디어(main idea)를 서술하는 한 개의 주제 문장(topic sentence)이 단락 첫머리에 나와야 한다. 단락의 나머지는 주제 문장을 설명하고 입증하고 발전시킨다. 마지막 문장은 주제 문장을 강조하거나 어떤 중요한 결론을 진술한다.

 1950년대 이후 많은 미국 영문과 교수가 “규칙은 창의성을 억누른다”며 『문체』를 비판했다. 하지만 ‘규칙을 알아야 규칙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버릴 수 있다’고 본다면 『문체』는 오늘날에도 생명력 있는 글쓰기 안내자다.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남미학 석사학위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 단국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William Strunk, Jr. 윌리엄 스트렁크 2세(왼쪽) :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자랐다. 신시내티대(1890년 학사)와 코넬대(1896년 박사)에서 공부했다. 코넬대에서 영어학·영문학·고전문학을 46년간 가르쳤다. 언어학자로서는 프랑스어 동사, 산스크리트어, 아이슬란드어, 고대 불가리아어 등을 연구했다.

◆Elwyn Brooks White 엘윈 브룩스 화이트 : 미국 뉴욕주 마운트버넌에서 태어났다. 1921년 코넬대를 졸업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대통령자유메달(미국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을 그에게 수여했다. 1978년에는 퓰리처상(평생 업적에 대한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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