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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송호근 묻고 백낙청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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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동료로 10여 년을 보낸 송호근 교수(왼쪽)와 백낙청 명예교수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났다. 두 지성은 분단체제 극복 방안을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문학자이자 사회실천가로서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백낙청(76) 서울대 명예교수는 진보진영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보수의 범람을 경계하고 진보세력의 갱신을 꾸준히 요구해온 그의 생애는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백병원 설립자의 조카이자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의 내력은 귀족적이었지만 그는 보수를 택하지 않았다. 19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민족, 민중문학론을 정립하고 분단체제론으로 밀고 나간 그의 지성은 지독한 일관성을 견지했다. 그의 예리한 눈빛은 여전히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마음을 갈라놓은 분단체제의 모순에 꽂혀 있었다. 그와의 대담에서 한국사회는 초라한 의존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의 실천방안을 열변한 직후였다.

 송 :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일단 풀어 대박을 내고, 그 대박은 동아시아 대박이고, 그거는 세계의 대박이다, 이런 논리구조를 갖고 있는데 세계체제론에서 출발해서 한반도 현실을 규정하는 선생님의 분단체제론과 반대되는 수순이 아닌지요?

 백 : 경륜과 지혜가 있다면 한반도에서부터 풀어나갈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주변 강대국들과 한국의 절대적 국력은 비교가 안 되지만 한반도 문제이기에 아무도 우리 역할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박 대통령의 통일 의지는 평가해요. 다만 그걸 위해 정부나 여당이 집착하는 많은 것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되는데 그런 큰 폭의 인식전환을 과연 할 것인지가 문제지요.

 송 : ‘인식전환’이란 남북한 혼합체제를 허용하자는 것인가요?

 백 : 아니요, 저의 지론이자 6·15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은 통일의 최종 모습을 미리부터 정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현행 헌법에 충실하고, 북한도 일단은 그쪽 체제를 유지하면서 변화하게 해주는 느슨한 결합을 추진하자는 것이지요. ‘혼합체제’건 자유민주주의건 처음부터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삼음으로써 교류협력조차 못하게 하지 말자는 겁니다.

 송 : 이명박(MB)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약속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구상에 밝힌 것처럼 교류협력사무소 설치, 평화공원 조성 같은 적극적 행보를 하고 있지요. 어떻게 보시는지요?

 백 : 거듭 말하지만 나는 대통령이 통일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봐요. 그리고 언설 자체의 파급효과만으로도 통일에 나름대로 기여한다고 봅니다.

 송 : 그런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백 : 재야운동 하는 분들은 수구보수세력을 반통일세력으로 몰아붙이는데, 박근혜 대통령이나 보수 측 통일론의 문제는 ‘반통일’이 아니라 ‘반시민참여’입니다. 박 대통령의 언설에서는 자기 식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요. 다만 이제까지 드러난 박 대통령의 기본성향의 하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따라와라’는 건데, 한국인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안 따라가거든요.

 송 : 지난 이명박 정권 때도 그랬습니다만, 한국의 보수정권은 시민참여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진보정권 역시 시민참여를 겉으로는 내세우지만 소수의 명망가들을 참여시켰지 문을 열어놓고 보수·진보를 다 아우른 것은 아니었죠.

 백 : 소위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라 했지 시민을 강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큰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남북관계 발전 또는 한반도 냉전 해체 차원에서만 생각했고 시민참여를 통한 분단체제 변혁이라는 개념은 없었어요. 시민참여를 처음부터 강조하고 나온 건 노무현 대통령이었죠. 그런데 이분은 국내의 시민참여와 남북관계 개선을 결부시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개념만 부족한 것이 아니고, 너무나 준비 안 된 대통령이었잖아요. 그래서 말만 참여정부였지,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불만이었고. 당시의 야당 입장에서 볼 때는 참여정부라면서 자기네들 몇몇끼리, 건달들이(웃음) 하는구나, 이렇게 돼버렸잖아요. 그래서 정권도 잃었고. MB정부가 들어서서 남북관계와 시민참여를 모두 후퇴시켜버렸죠.

 송 : 그만큼 어려운 과제라는 뜻이겠지요. ‘마음의 분단’이 오래 고착된 상황에서 양측의 마음이 열릴 수 있을까요, 북한에 ‘핵 포기’는 항복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터인데요?

 백 : 제가 분단체제론에서 제기했듯 남북연합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가 필수예요. 하나는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으로 시작되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시민참여 없이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낮은 단계라도 연합기구를 만드는 것은 남북 각각의 정권이 자기들의 권한을 일부 내려놓는 것입니다. 연합기구를 공동운영하는 과정에서 남북대치의 원인이자 산물인 국가주의를 ‘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수정하는 계기가 만들어집니다. 우리 남쪽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분 중 많은 이가 실은 국가주의자거든요. 북은 인민의 주체성을 얘기하지만 국가주의가 맹렬한 곳이고요. 남북연합은 분단 국가주의를 수정하는 중대한 계기인데, 시민들의 상당한 압력이 가해져야 가능하고 또 그만큼 시민들의 권한이 늘어나는 결과가 되는 것이죠.

 송 : 이 국가주의라는 것을 조금 유보하거나 다른 형태로 변형하라고 했을 때 남한사회 안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겁니다. 국가가 곧 정체성이고, 이를 기반으로 20세기의 어려운 시대를 넘어왔는데요.

 백 : 국가를 상황에 맞게 상대화해 나갈 줄 알아야 됩니다. 한반도에는 지금 질이 안 좋은 국가가 남북 양쪽에 다 있어요. 양쪽이 똑같은 정도로 불량하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한반도가 재통합하는 과정에서 좀 나은 복합국가로 개조해 나가는 작업 내지는 새로운 국가 형태를 건설하는 사업을 통해서 국가주의를 완화하고 해소해 나가야지요.

 송 : 선생님이 편집인으로 있는 ‘창작과비평’에서 최근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했는데요, 진보진영에서는 다소 뜻밖의 사건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압니다.

 백 : 일부 언론에서 마치 창비가 뒤늦게 북한 인권문제에 눈뜬 것처럼 보도한 바 있는데요, 실은 분단체제론이라는 게 본래 북한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개념입니다. 다만 가령 인권문제에 북한 당국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하더라도, 분단체제 여러 당사자의 책임도 냉정하게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소위 진보진영에서 북한 인권 비판이 이제까지 부족했던 건 사실이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북한 인권문제를 열렬히 비난해온 인사들이 균형 잡힌 비판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송 : 선생님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소위 ‘2013년 체제’를 내세워 1987년과 같은 급격한 변혁을 일궈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실제로는 실패한 것 아닌지요?

 백 : 맞아요. 2013년의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번 더 대대적인 전환을 해보자 하는 취지를 그런대로 담아낸 표현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었다고 봐야죠. 극우세력의 헤게모니 아래 포진한 수구보수진영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을 과소평가한 것도 사실이고요.

 송 : 87년 체제가 유효성을 다한 것은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죠.

 백 : 노동조합, 시민단체, 더 넓게는 재야운동세력이 민주화 주역들이었는데, 87년 체제는 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화도 추진한 체제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세력균형은 점점 기업으로 기울고 대기업의 노조일수록 사회운동단체라기보다는 이익단체에 가깝게 됐죠. 그런 점에서도 87년 체제의 시효가 다 된 것이지요. 87년 체제의 또 하나의 동력은 남북관계 발전이었다고 봅니다. 그 물결을 타고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도 하고 남북기본합의서도 만든 거지요. 아무튼 이제는 조금 더 다양한 시민층을 포괄해야 합니다. ‘변혁적 중도주의’의 취지도 그런 것입니다.

 송 : 선생님이 주장하신 ‘변혁적 중도주의’를 두고 시민들은 ‘뭐냐, 선이 분명치 않다’고 할 수 있겠고, 진보진영에서는 ‘이 절박한 순간에 웬 중도냐’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백 : 실제로 논란이 많지요. ‘변혁’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혁을 뜻합니다.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바뀌면서 한반도 전체가 분단체제에서 그것보다 나은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쪽의 변화만을 주장하는 단순논리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들을 중도에 모아가려는 개념입니다. 중간 부동표를 잡으려는 ‘중도 마케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죠.

 송 : 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중요한 진전이 있었지만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야 하는 이 시점에서 한계를 지적한다면?

백 : 이만큼 열린 것만 해도 한국인으로서 자랑할 일이지요. 그런데도 더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1987년 체제의 태생적 한계 때문일 겁니다. 61년 군부체제나 87년 체제나 1953년 이래의 ‘분단체제’라는 공통 기반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87년 체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었던 거예요. 정치, 경제민주화가 한계에 봉착하면 남북관계도 잘 풀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세 개의 축 모두 교착상태에 빠진 형국이지요.

 송 : 선생님이 ‘변혁적 중도주의’의 주체를 ‘줏대 있는 중도세력’이라고 했듯이 저도 시민이라는 원래의 개념을 회복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합니다. 일찍이 60년대에 선생님께서 시민문학을 처음 얘기했잖아요. 그걸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밀고 갔으면 어땠을까, 민족, 민중문학으로 전격 전환하지 않고 말이지요? 혹시 그런 점에서 원죄가 있는 건 아닌가요?

 백 : 민족과 민중 개념은 나름대로 시대적 의미를 갖는 것인데,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양분화는 문제입니다. 그건 활동가들의 편의를 위해 구역을 정리한 거지 사회운동이 그래서는 안 되죠. 국민에 대한 설득력이 안 생깁니다. 통합진보당 문제가 좋은 예지요. 지금까지는 진보의 이름으로 민중진영이 진보당 당권파와 함께했는데, 이제 선을 긋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있지요. 다만 예컨대 변혁적 중도주의 같은 뚜렷한 명분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해요. ‘종북이니까 같이 못한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건 종북 프레임을 강화시켜주는 자충수가 됩니다. 종북 프레임은 기본적으로 남한의 국가주의 프레임이에요. 다른 한편으로 ‘표 떨어지니까 같이 못하겠다’는 건 명분이 아니고 타산일 뿐이죠.

 송 : 선생님의 지론인 분단체제론은 단순한 이론을 넘어 외연과 내포가 깊고 넓은 일종의 사상에 접근한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선생님은 국가주의의 완강함을 지적했어요. 그 장벽을 넘고자 할 때 민족, 민중보다 시민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지금 시민들은 약간 지쳐 있는 듯합니다. 민족과 민중이라는 1987년 체제 용어는 다 버리고 그냥 시민이라는 느슨한 쪽을 택하고 싶은 거죠.

 백 : 사람들은 첫째, 생활에 지쳐 있고요, 또 하나는 되지도 않는 통일을 억지로 하자고 외쳐대는 통일운동가들에 대해서도 피곤해합니다. 그래서 내가 2000년대 들어와서 ‘어깨에 힘 빼고 통일하자’는 말을 했어요. 시민들의 느슨한 연합, 각자가 자기 생활에 충실하면서 각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시민운동 내지 분단체제 극복 노력, 그런 것이 전체 통일 과정에 영향을 주는 프로세스가 필요한 거지요. 중간단계를 거쳐 진행되는 한반도 통일의 과정에서 시민참여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지는 거고요. 이때 ‘민족’을 버려서도 안 되지만 그런 통일 과정을 민족이라는 말로 온전히 담아내기도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송 : 선생님께서는 2006년도에 이미 분단체제가 해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너무 성급한 진단 아닌가요?

 백 :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교류협력이 본격화되었다가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난관에 부닥쳤다가 2005년 9·19 공동성명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바야흐로 ‘해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그 무렵에 나왔어요. 그러나 이후의 진행을 볼 때 지적하신 대로 지나친 낙관 맞습니다. 다만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고, 북에서 핵실험을 계속하고, 남북 간 갈등이 생기고 서해안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하는 것들은 분단체제가 다시 안정되는 게 아니라 더 심하게 동요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죠.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송 : 포용정책 2.0을 내놓으셨는데요.

 백 : 6·15 공동선언 이후의 남북관계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계속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교류 활성화를 통해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점에 관해 저는 오히려 보수진영의 회의적 시각과 일치했어요. 남북 간 연합기구 창설 같은 새로운 정치적인 타결이 있을 때만 북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고 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실적으로는 낮은 단계의 연합에서 출발해서 조금씩 단계를 높여 나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송 :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도 시민참여의 장벽 아닐까요?

 백 : 물론이지요. 하지만 분단현실 자체를 망각하는 경향도 문제예요. 그게 이른바 진보적인 학자들 사이에 특히 심하다고 봐요. 보수진영, 특히 극우세력은 항상 분단을 정치적으로 활용합니다. 반면에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 남한에서 민주주의 제대로 하면 되고, 복지 하면 된다, 더 급진적인 사람들은 남한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우리 학계와 지식계의 식민성이랄까 그런 풍토와 관련됐다고 봅니다. 우리 문제를 우리 눈으로 보지 않고, 남의 나라 얘기를 읽고 베끼고 전파하는 걸로 지식인 행세를 하는 거예요. 진보적 학자들이 곧잘 참조하는 선진사회가 분단사회가 아니잖아요. 그런 사회를 기준으로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비판하다 보니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죠. 국민들이 전혀 공감하지 않는 공허한 요구를 하기 일쑤인데….

 송 : 그러면 기존 진보의 방식은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백 : 그걸 다 내던지자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단순논리와 극단주의를 떠나 변혁적 중도로 수렴하자는 겁니다. 한반도 전체의 변혁을 겨냥하는 광범위한 중도세력이 모여 그에 걸맞은 남한사회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거예요. 한국이 분단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면 이런 이야기가 너무 미온적으로 들릴 뿐이지요. 나는 그걸 ‘후천성 분단인식결핍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웃음)

 송 : 유럽에는 EU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동아시아는 국가주의로 무장한 나라들이잖아요. 거기에 또 역사 대치선이 있기 때문에 결국 민족 개념에 기댈 수밖에 없고요. 우경화하는 일본과 대면하면 오히려 민족과 국가를 강화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우리 지성계가 풀어야 할 과제죠.

 백 : 일본이 저렇게 우경화하니까 우리도 국가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남북 간 문제를 우리가 지혜롭게 풀어가면 일본도 ‘이러다가 우리만 촌놈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일본이 강하게 나온다고 해서 강하게 맞서면 우리가 더 손해 볼 가능성이 있죠. 중국이 세게 나가면 일본이 겁을 먹을지 몰라도 한국이 세게 나가는 건 큰 효과가 없을 겁니다.

 송 : 그런데 박 대통령은 세게 나가고 있잖아요. 인사도 안 받고.(웃음) 싸늘한 표정 자체가 일본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처럼 보이거든요.

 백 : 과연 그게 정부 외교전문가 또는 한·일 관계, 일본 문제 전문가들의 중론을 대변하는 건지는 의문이에요.(웃음)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일본이나 중국이 더 품위 있게 행동하게 만들어갈 출구가 있습니다. 그게 남북관계예요. 만약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며, 국가주의가 완화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가면, 일본과 중국이 ‘한반도를 봐라. 저런 길이 있잖냐’ 하고 반성할 가능성이 늘어날 겁니다. 반면에 한반도가 통일을 하더라도 강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한 통일국가가 된다면 중국은 중국대로 굉장히 불편할 거고요, 일본에는 더욱더 우경화의 빌미가 될 것입니다. 통일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국가,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를 우리가 만들어낸다면 그건 하나의 모범이 되고 모델이 되지요.

 송 :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란 의미심장한 말인데, 그것도 해나가는 과정에서 궁리해보자는 얘기군요. 아무튼, 그간 해왔던 사회운동의 방식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백 : 사회운동은 마음공부하고 같이 가야 된다고 봅니다. 소위 야권이나 진보진영이 신뢰를 잃은 이유 중 하나는 독재와 싸울 때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마음공부가 안 된 친구들이 너무 많더란 말이에요. 개혁이 안 된 인간들이 나서 개혁을 하겠다니까 국민들이 신뢰를 안 하는 거지요.

 송 : 한국인이 앞으로 미래지평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잘 하자, 마음속의 분단을 직시하자는 걸로 결론을 삼아야겠네요. 오늘 장시간 말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 후기
“문학인으로 남았다면 좋았겠다”는 노학자

그의 목소리는 맑고 가냘팠지만 통일론을 설파하는 논지는 굵은 바리톤 음이었다. 10여 년을 같은 대학에 다녔어도 얘기해 본 적은 없었다. 캠퍼스 먼발치에서 뵈었거나 진보운동 전위에 서 있던 그를 목격했을 뿐이다. 한국의 지성계가 이러하다. 그가 창간한 ‘창작과 비평’에서 글쓰기에 어지간히 단련된 나에게 원고 청탁을 한 적은 없었다. 2세대 편집인들이 나를 다른 종(種)으로 분류한 탓이다. 백낙청 교수는 로렌스 연구로 학위를 받았고 시민문학론으로 등단했는데 분단 현실이 그를 사회과학자로 변신시켰다.

 그의 부친은 백병원 설립자인 백부와 함께 납북됐다. 소설가 이문열도 6·25 때 부친이 사라졌다. ‘부친의 부재’는 어떤 식으로든 의식 형성에 개입하기 마련인데, 서서히 분단 장벽에 걸터앉아 본질을 규명하려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노릇이다. 그런데 이문열은 진보파에 의해 분서갱유를 당했고, 백낙청은 보수파에 의해 세 번 감옥을 갔다. 노선이 다르면 적(敵)으로 간주되는 한국에서 양쪽의 동시적 변화를 촉구하는 통일담론을 내놓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분단체제론은 양쪽의 변혁 없이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대담한 구상이다. 보수진영엔 위험한 발상이고, 어찌 보면 낭만적 환상같이도 느껴진다. 변혁은 이상주의자의 저작권으로 그것 없이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 법이다.

 문학은 이상주의자가 즐겨 찾는 도피처다. 있을 수 있는 일을 있는 일로 가공할 수 있다. 백낙청 교수는 문학인으로 남았으면 좋았겠다는 늦은 푸념을 털어놓았다. “뜨내기니까!” 학문을 하는 뜨내기...라, 뜨내기 아닌 학자가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그는 학문과 실천을 결합하려고 맹렬하게 달려오지 않았는가. 그런 일관성엔 자부심을 느낀다는 백 교수는 대담에서 진보진영의 일대 반성을 촉구했다. 제발 구태를 벗어라, 그리고 공부 좀 해라! 노학자는 여전히 마음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