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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학 교수』를 읽고|고윤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근년 국내 여러 대학이 교수 신규 채용에 공개 모집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국내외의 유자격자를 유치한다는 취지이니 반갑고 또한 교수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학계를 위해서 다행한 일이다.
극히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대학교수란 직업이 8·15해방과 더불어 이 땅에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 30년이 지난 이제 교수 채용 방법이 형식적으로는 제대로 되어 간다고 하겠다. 8·15해방 또는 6·25사변 직후에는 「채용」보다 「초빙」이라 하였던 것 같다.
교수로서의 자격자가 드물었고 급격히 증가하는 수요를 메우기 위하여 대학, 특히 외국의 명문 대학의 학부에서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면 의당 교수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아 초빙을 받았던 것 같다. 이분들이 우리나라의 첫 세대 교수들이다. 이분들은 강의를 맡고 연구 분야를 개척하면서 교수 요원의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그들 중에는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외국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아 온 분도 많았다.
대학원이 생겨서 연구 과정이 틀에 잡히기 시작하였고 상당수의 학부 졸업생들은 외국의 대학원에서 수학하여 돌아와 이들 중에서 제2세대의 교수가 태어났다. 이 세대는 취임초의 자격으로 보아 첫 세대보다 평균적으로는 더 나아졌다고 보겠으나 대부분 첫 세대의 교수들에 의하여 좁은 범위의 대상자 중에서 선발되었다고 보겠다.
그러나 이제는 그 범위가 넓혀진 제3세대의 교수가 전형되는 것이다. 박사 학위를 가질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 동안에 쌓은 연구 업적을 심사 받게 되었다. 제2세대가 장래의 업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였다든가 또는 단순히 박사 학위를 갖추었다는 자격으로 채용되었던 것에 비해서 제3세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 업적을 명백히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전형되리라 기대된다.
하긴 좋은 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공개 채용이라는 형식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응모하는 수에 따라 달라지겠고 이는 그 대학의 교수직에 얼마나 끌리는 사람이 많으냐에 달려 있다. 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형 심사 과정에서의 평가일 것이다. 심사하는 사람이 교수들일 테니 그들의 학문적 양식과 공정한 평가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외국 학계에 심사를 위촉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심사에는 과거의 업적뿐만 아니라 장차 대학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교육과 연구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지를 분별 판단하여야 하는바 여건에 좌우되는 연구 분야도 있으니 국내 또는 그 대학의 사정에 익숙한 사람의 판단이 가장 중요시되어야 하리라.
학문과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회나 대학의 학문적 양식이리라.
대학교수를 채용하는데 자기의 혈연관계를 으뜸으로 한다든가 자기가 길러 낸 제자들로 소위 「도제왕국」을 형성한다든가 하는 예가 있다면 이는 양식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자기를 비판할 수 있는 학자를 얻기 위해서 다른 학자나 다른 대학에서 수학한 사람만을 채용하는 외국의 대학과 교수들의 양식을 많이 본다.
학문적 양식은 그 바탕을 학문 자체에 두고 학문을 지상으로 여기는 곳에서 출발하며 학문 외적 요소를 되도록 배제한다 학문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학계의 깊이와 폭이 더함에 따라 이 양식은 그 사회에 뿌리박겠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를 의심할 일들이 가끔 있다. 외신에서 획기적인 신발견이 보도될 때 우스운 일이 일어난다.
그 분야에 대한 명확한 자신을 갖추지 못한 「권위」교수가 당치도 않은 설명이나 「코멘트」를 제공하는 것은 신문기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잘 모른다」고 할 줄 모르고 자기가 아는 체하는 양식의 결핍자들이 있는 것이다.
과학 분야의 연구가 기재를 필수로 하지만 예산이 나오면 자기가 쓸지도 모르고 필요로 하지도 않은 기구를 욕심사납게 구입하고 마침내는 귀중한 외화를 사장하는 예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양식이 모자란 탓이다. 학문한다는 사람에게서 이 양식이 모자란 것을 흔히 보는데 하물며 관료들에게 어찌 이 양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대학이 학문의 양식에 의해서 운영되고 기획되고 지배되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제3세대 교수들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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