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제 view &] CEO 연봉 공개 이후 해야 할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구학서
신세계 회장

대기업 임원의 연봉 공개가 뜨거운 화제로 등장했다. 일부 최고경영자(CEO)들이 수백억원대 고액 연봉을 받는 게 처음 공개돼서다. 제도의 취지가 사회적 갈등 조장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연봉 공개는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공개 대상인 기업은 주주나 채권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는 곳들이다. 연봉 공개를 통해 이들 이해관계자가 CEO가 제 몫을 하고 있는지, 경영은 효율적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그쳐서도 안 된다. 임원 연봉의 적정 기준을 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각 기업은 이를 토대로 각자의 실정에 맞는 내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의 대기업들은 CEO 연봉이 종업원 평균급여의 20배를 넘지 못한다는 내규를 갖고 있다고 한다. 20배가 적정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임원 연봉을 종업원 급여와 연동시킨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실적이 좋은 회사는 당연히 임원의 연봉도 많아야 할 것이지만 종업원의 급여도 같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연봉 공개를 잘 활용하면 경제 민주화의 핵심과제인 양극화 해소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0년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권도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장됐다. 그러나 양극화의 골도 동시에 깊어지고 있다. 부자는 점점 더 빨리 부자가 되고 있고,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빈부 격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세계 인구의 상위 10%가 86%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풍요 속의 빈곤’에 빠지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이 더 많은 적자가계가 전체의 23.8%에 이른다. 전체 가계부채도 1997년 200조원에서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하며 빠르게 늘고 있다.

 경제 주체로서 개인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부와 가난만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나 재능도 다르게 타고 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이런 환경과 능력의 차이를 국가가 보완해주지 않으면 빈부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득권자들의 양보와 협조를 통해 능력과 환경의 차이로 인한 불평등이 조금씩이라도 해소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99%다(We are 99)”를 외치는 다수에 의해 사회 불안이라는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이다. 50년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상위 1%의 고소득자에게 90%가 넘는 소득세를 부과했다. 우파인 공화당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좌파적인 정책임에도 실현이 가능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내걸었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하나도 펴지 못했고,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기득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우파정권이 양극화 해소에선 오히려 좌파정권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례다.

 다만 양극화 해소의 방향은 심사숙고해서 잡아야 한다.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인 존 롤스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경제적으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한 배려를 하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보다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자를 구제해 가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비춰보면 보편적인 복지보다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뜨거운 논란의 대상인 반값 등록금이나 무상급식, 기초연금과 같은 보편적인 복지의 확대보다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고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라는 얘기다.

 연봉 공개를 통해 드러난 근로소득의 차이는 훨씬 크고 다양한 양극화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를 계기로 사회 구성원 각자가 파이도 키우고 내 몫도 늘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정치권과 기업, 국민이 이런 고민을 함께할 때 발전하는 경제, 지속가능한 사회가 가능해질 것이다.

구학서 신세계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