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표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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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안정을 위한 가격 표시제가 실시 벽두부터 큰 혼란과 마찰을 빚고 있는데 대해 소비자들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업자들의 농간 때문이든 혹은 행정상의 차질 때문이든 간에 가격표시제의 혼란과 마찰은 하루라도 빨리 진정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20일부터 본격적으로 단속에 나선 관계부처 합동 조사반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있다. 그러나 이번 단속이 과연 대중 요금의 궁극적인 안정에까지 이르게 될지, 또는 이전의 협정요금 단속에서와 같이 일시 미봉적인 호통만으로 끝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오직 바람직한 길은 가격 표시제의 본뜻을 업계에 충분히 납득시키고 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이해하고 협조하는 길뿐이다.
이 점에서 볼 때, 행정당국의 노력이 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가격 표시제는 물가 안정법에 따라 모든 가격 담합 행위가 금지됨으로써 종전의 협정 요금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진작부터 충분한 사전 계몽과 지도를 편 뒤에 업계의 호응을 얻어 실시되는 것이 좋았다.
비록 그동안 한 달의 준비기간을 거쳤다지만, 막상 실시되는 날 까지도 많은 업소에서 가격 표시제가 무언지,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이는 행정노력의 미흡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개중에는 제도의 변경을 틈타 부당하게 값을 올려 보자는 업자의 농간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농간은 행정이 조금만 틈이라도 보이면 언제나 나타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먼저 해야할 일은 정부가 대중 요금 안정에 확고한 결의를 갖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한치의 빈틈이라도 보이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가격 표시제도 자체는 종래의 협정 요금 제도에 비해 한 걸음 진전된 것이기는 하다. 무엇보다도 업자의 담합을 배제한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수년동안 뿌리 깊어진 대중 요금업계의 담합이 제도 변경만으로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 제도실시에도 아직 찻값이나 목욕 값 등에서 담합의 흔적이 역력한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선은 업계 담합의 위법성을 주지시기고 점진적으로 담합의 소지를 줄여 나가는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합동 단속반의 행정력이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보사부·치안본부·세무서·시·도청 직원 등에서 방대한 인원을 동원한 단속반을 상설 운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단속인원만 많다고 반드시 효율적인 단속이 될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단속 부서간의 긴밀한 협조가 안되면 오히려 번거로움만 더하는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가장 바람직한 길은 가격 허가 업무는 물가 당국과 국세청이 맡고 표시제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기능은 시·도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격 표시제의 기본 뜻은 대중 요금의 안정에 있지만 이 제도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해당품목 또는 「서비스」수급이 원활해야 함은 물론이다. 때문에 가격 억제와 표시 이행 못지 않게 공공 요금이나 원료가격 안정에도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가격 표시가 거의 무색하게된 쇠고기 파동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한편 경우는 다르지만 연탄 가격도 지역에 따라 최고가격을 웃돌거나 탄질이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으므로 합동 단속 대상에 포함하고 정기적인 탄질 검사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격 표시제의 성공여부는 결국 물가 행정 능력에 달려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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