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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재임용제 시행을 계기로 본 그 실상-사제지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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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교수와 학생 사이에 대화의 창구는 활짝 열려 있으나 존경과 사랑 속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는 별로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말이다.
대학교수의 기능과 역할이 어느 면에선 점차 중·고교의 「담임선생」처럼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대학마다 대폭 강화되고 있는 학생 분담 지도제는 그 대표적인 「케이스」.
교수마다 20∼30명의 학생을 맡아 주당 2∼4시간의 면담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
K대 L교수(53)의 분담 지도 학생은 25명. 매달 한번씩 지도 결과를 학장에게 보고하고 이른바 문제 학생 2명에 대한 특별 지도 보고서를 수시로 작성한다.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는 주로 전공·교우 및 이성 관계·가정 문제 등이 주된 내용.
또 영향력 있거나 문제성 있는 학생에 대해서는 학부모와 교우 관계를 통해 연계 지도를 펼 수 있도록 가정방문까지 해야 한다.
S대 P교수는 분담 학생의 가정 환경·의식구조·종교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 학생 지도의 자료로 삼고 있다.
J대 K교수는 분담 학생을 7인1개조로 모두 5개조를 편성, 「그룹」지도 방법을 택했다. 공통된 관람회 관람이나 음악감상 시간을 갖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개인 면담을 하는 것은 흔히 대화가 겉돌기 쉽다는 것.
분담 지도제는 이제 학생들의 생활 상태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서울대는 지난 겨울 방학 동안 극빈자 우선의 장학생을 선발키 위한 방법으로 분담 지도 교수를 7개 지역으로 파견, 호별 방문을 실시했다.
평소 연구실에만 파묻혀 있던 A부 교수의 담당 지역은 충남일원. 산간벽지의 30릿길을 걸어 들어가 오막살이에 호롱불을 켜고 사는 B군의 집을 찾았다.
위인들의 성공담과 인생 문제로 밤을 새운 A부교수는 쌀1가마를 몰래 들여 주고 상경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학생 생활 전반에 걸쳐 권위주의를 버리고 어버이와 같은 자애로 보살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몇해 전 K대학 C교수 연구실에서 있던 일. 교수와 학생간의 불신 풍조가 만연되어 있을 무렵, 평소 C교수를 존경하던 H군이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C교수의 「비전」을 제시해 줄 것을 바랐다.
한참 동안 명상에 잠긴 C교수의 첫마디. 『H군, 가방 좀 열어보게. 녹음기 없나?』가방을 열어 본 후 스승과 제자는 손을 마주잡고 폭소했다는 얘기다.
학생들이 연구실이나 집으로 찾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기거나 경계하는 교수도 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인기도는 교수들의 권위를 높여 주는 역할을 했으나 요즈음은 쓸데없는 오해를 살 염려가 있다는 것.
S대 K조교수는 연구실 문에 주당 3시간의 면담시간을 표시해 놓았으나 『찾아오는 학생도 많지 않지만 학생들이 몰려올 경우 귀찮을 때도 있다』고 했다. K교수는 학생 지도비 조로 지급되는 월 1만원씩을 모아 한 학기에 한번 정도 시내에서 회식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했다.
사회학자들은 동료·선배·스승과의 대학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젊은 학생들은 축적된 불만을 육체적으로 발산하려 한다고 말한다.
대학가에 열병처럼 번진 「티·미팅」 「고고·미팅」 등 「미팅·붐」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을 집으로 초청, 술잔을 건네며 정담을 나누고 있다.
서울대 S교수의 경우 1주일에 평균 50여명의 제자들이 집을 방문, 2∼3시간씩 대화를 갖는다.
S교수는 사제지간의 대화는 상하의 대화가 아니라 인격적·학문적 대화라고 말한다. 또 질문은 무엇이나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학원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대학생 문제연구소에 설치된 상담실에는 요즘 하루 평균 10여명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배나 많은 숫자. 공연히 불안하고 잡념과 공상에서 헤어나지 못한 학생들이 대부분. 거의가 대화의 결핍에서 오는 증상으로 분석됐다.
사회학자 L교수는 『교육자가 소신에 따라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교권이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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