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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김찬삼 교수 세계 여행기-「마르코 폴로의 여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페르샤」만에 자리잡은 「반다르아바스」항에 「버스」로 이르렀을 때는 어두운 저녁이었다. 여관이란 여관은 모두 만원이어서 「이슬람」교 사원에서 신세를 지려고 찾아가는데 경찰서가 보인다.
차라리 경찰서에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마침 직위가 높아 보이는 경관이 나오기에 다시 사정을 했다. 역시 거절하며 어느 여관에 가보라고 하면서 경관을 딸려 보낸다.
바로 아까 들렀을 때 만원이라고 하던 곳인데 경관이 와서 권유하니까 「패스포트」를 내라고 하며 방 값은 아주 싸지만 선금을 받는다. 안내한 방은 다름 아닌 내정인데 대추·야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방마다 합숙이며 2층「베란다」도 만원이지만 이 내정에 놓여 있는 70개의 고물 침대에도 손님이 차 있으며 「콘크리트」바닥에서도 그대로 자리를 깔고 재우는지 침구가 마련되어 있다.
이 내정에서 자려는 사람은 2백여명이니 떠들썩하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어 국제적인 무슨 모임 같기도 하다. 「이슬람」교 예배 시간에는 쥐죽은듯이 조용하지만 금방 또 수선거리니 편히 쉴 수 없을 것 같아 차라리 사문에 나가 혼자 쉬는 것이 더 편안할 것 같았다. 이때 키가 훤칠한 「유럽」청년이 자루를 메고 내 곁으로 온다. 그는 「프랑스」사람인데 여관은 만원이어서 나처럼 경찰의 호의로 이 노천 합숙소에 왔다고 한다.
외국 여행자를 서로 만나니 반가 와서 우리는 금방 친해졌으며 「룩색」을 보관시키고는 시장에 가서 값 싼 음식으로 늦저녁을 들고는 그와 여행담을 나누며 대추·야자나무 아래에 놓인 쇠 침대를 바싹대고 누웠다. 만일을 생각하여 구두는 벗어 침대 밑에 매달아 놓고 「카메라·백」은 애인처럼 꼭 껴안고 자는 것을 있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만삭이 된 남장 여인으로 생각되는지 힐끔힐끔 바라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아침에 깨 보니 밤에는 기온이 내려서 춥던지 「프랑스」청년과 나는 서로 꼭 맞대고 있었다.
내가 쉰 숙소 앞은 바로 「페르샤」만 바다인데 눈앞에 「호름」섬이 보였다.
이 섬은 지금은 농사를 짓는 한산한 곳이지만 중세기에는 동서무역이 활발했으며 「포르투갈」이 세계 해양을 지배할 때 요새를 만들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섬이다. 그러나 나에게 유독 이 섬이 무한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은 저 유명한 「마르코·폴로」가 중국에서 「베네치아」로 돌아갈 때 선편으로 들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마르크·폴로」의 옛 발자취를 찾아보려고 이 「호름」섬에 가기 위하여 「프랑스」청년과 함께 역사 지도를 갖고 부둣가로 나갔다.
그러나 그 섬과 연락하는 나룻배도 없을 뿐 아니라 타고 갈 배도 없어 할 수없이 부둣가에 우두커니 서서 그 「호름」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적으로는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건만 공간적으로는 바로 저 섬이 「마르코·폴로」가 들렀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신비스럽게만 느껴진다.
더구나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좋아한 나는 그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기어이 그와 같은 여행자가 되려고 했는데 이번 다섯번째 세계 여행길에서 그가 다닌 길을 더듬으며 옛날을 상상하노라니 섬 위에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르코·폴로」의 위대성을 찬양하며 외람되게도 나는 그전 「칠레」의 어떤 언론인에게서 「마르코·폴로 2세」라는 칭호를 받고 큰 자랑을 지니고 지금까지 여행을 계속해 왔지만 정작 「마르코·폴로」가 다닌 길을 찾아 그 옛 모습을 만나게 되니 나에게 붙여 준 「마르코·폴로 2세」란 이름이 나에게는 너무나 과한 듯 하며 혹 그의 이름을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다.
이같이 옛사람과 영적으로 말을 주고받는 것은 비단 이 「이란」땅에서 뿐은 아니며 많은 곳을 쏘다니며 세계의 위인이나 영웅들이 다닌 길을 더듬으며 환상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내가 여행에 미친 몸이어서 그런지 여행가 「마르코·폴로」와의 이 공간적인 해후는 더욱 감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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