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패러디 파라다이스] 남편의 730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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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30면

지금 카메라 찍고 있나요? 맞아요. 나는 여행을 간다고 집을 나와서는 2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않았지요. 아내에게 편지나 전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나는 집 바로 옆길에 숙소를 정하고 날마다 집을 바라보고 아내를 관찰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나는 마치 집을 비운 지 하루 만에 돌아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문에 들어서서 다정한 남편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 부부에게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글쎄요. 약간의 문제는 어느 집에나 있게 마련이죠. 대화 부족, 성격 차이, 사소한 말다툼, 섹스리스. 이런 것들은 마치 집집마다 있는 그릇이나 이불처럼 생활의 증거 아닐까요. 물론 행복이 가득한 집, 사랑이 넘치는 부부라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부부간의 애정은 격렬함은 없지만 차분하고 습관적이며 정상적인 감정의 것이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려던 걸음을 멈추게 한 건 이런 생각이었어요. 혼란스러워 보이는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개개인은 어떤 체계에 아주 잘 적응하고 또 각각의 체계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전체의 체계에 아주 잘 적응을 해서, 한 순간이라도 거기서 벗어나면 인간은 자신의 자리를 영원히 잃는 끔찍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 되는 것. 그러니 딴생각 말고 체계에 잘 적응해서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어요.

‘달라졌어요’ 출연 신청은 아내가 했죠. 나도 잘 압니다. 바로 집 옆에 살면서 아내를 관찰한 행동을 두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한다는 사실을. 관음증적인 인간이라며. 그러니까 그 이상한 행동의 저변에는 어떤 병적인 허영심이 깔려 있었던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요. 나는 허영심의 인간입니다. 어쩌면 변태인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나는 궁금했을 뿐입니다. 내가 없는 동안의 삶이.

당신은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나는 내가 죽고 난 후의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부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이웃과 친구들의 생활을. 그러자면 나는 죽어야 했습니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 스스로를 추방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바로 옆길인데 말이지” 바보 같으니라구! 그것은 옆길이 아니라 다른 세상이라오.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데 2년이나 걸렸어요. 24개월, 730일! 당신 말처럼 바로 옆길인데 말이죠. 어두운 창가에 앉아 집을 바라보면서 매일 밤 나는 다짐했습니다. 내일은 집으로, 아내 곁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아침이 되면 간밤의 결심은 밤에 쓴 글처럼 쑥스러워져 매번 귀가를 미루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아, 그것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시간이 우리가 즐겨 하는 어리석은 짓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 모두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늘 젊은이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은 못하고서. 난 아내에게 죄인이오.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것으로 내 변명은 끝났소. 이제 내가, 내 행동이, 내 잘못이 이해가 되시오?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그만둡시다. 카메라 치워요. 달라졌다고? 누가 그래요? 난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 컬러 부분은 모두 너새니얼 호손의『웨이크필드』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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