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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 교육 … 일본 미래세대 국제사회 고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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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독도 점령’이란 단어까지 등장한 이번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그 밑에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총재특보의 ‘합작품’이다.

 아베 총리는 출판사들의 교과서 제작이 시작된 지난해 4월 국회에서 “교과서 검정기준에 교육기본법의 정신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베는 총리 1기 재임 중이던 2006년 11월 애국심 교육을 강화한다며 1947년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손댄 적이 없는 교육기본법을 59년 만에 뜯어 고쳤다. 이후 중·고교 학습지도요령이나 해설서가 확연하게 ‘우클릭’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은 것이다.

 아베의 뜻을 헤아린 아베의 행동대장 하기우다 특보가 총대를 멨다. 그는 지난달 말 한·미·일 정상회담 직전에도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검증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새로운 담화를 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다.

 하기우다는 아베의 국회 발언 직후 당내에 ‘교과서 검정기준 개정 부회(部會)’란 조직을 만들었다. 45명의 국회의원까지 끌어모았다. 그리고 지난해 5월 28일 도쿄서적·교육출판·짓쿄(實敎)출판 등 출판사 3곳의 사장과 편집 책임자들을 한꺼번에 자민당사로 불렀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80분간 계속된 이 자리에서 부회 책임자인 하기우다는 “교육기본법과 학습지도요령이 바뀐 만큼 교과서 기술도 변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려 달라”며 압박했다. 다른 의원들도 일제히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명칭)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다”며 출판사를 성토했다.

 또 여기에 시모무라 문부과학상도 “자국 고유의 영토를 아이들에게 정확히 가르치는 건 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며, 당연한 것을 당연히 기술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엄호에 나섰다.

 아베 정권의 ‘타깃’이 된 도쿄서적과 교육출판은 그동안 별도로 영토 관련 기술 없이 지도상 독도 좌측에 국경선을 표기하는 방식으로 교과서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결국 두 출판사는 아베 정권의 강한 압박에 두 손을 들었다. 두 곳의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과 교과서 채택률은 합해서 80%에 달한다.

 도쿄서적은 이번 검정에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새역모’의 맥을 잇는 우익 지유샤(自由社)의 중학교 공민 교과서(채택률 0.02%)에서나 간신히 찾아볼 수 있던 ‘점령’이란 표현까지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게다가 청일, 러일전쟁과 관련해선 “구미 국가에 일본의 힘을 인정하도록 해 구미의 지배로 고통받는 아시아 국가들에 용기를 줬다”는 황당한 내용까지 기술했다.

 아베 정권은 이달 중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교과서 검정 문제를 털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요구해 온 위안부 문제 관련 국장급 협의가 이달 중순으로 예정돼 있는 만큼 한국이 교과서 검정 문제로 판을 깨지 못할 것이란 계산도 엿보인다.

 이에 대해 하종문 한신대 교수(일본학과)는 “‘독도 점령’을 표기한 초등학교 교과서의 검정 통과는 일본의 미래세대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행위”라며 “아베 신조 총리의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는 헤이그 발언을 신뢰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현재 재외 공관장 회의 참석차 한국에 귀국해 있는 이병기 주일대사는 당초 예정대로 8일 일본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서울=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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