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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200m 고지서 삐~삐~ 고목 구멍에 웅크린 곰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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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일 지리산에서 종복원기술원 연구원들이 전파수신기를 이용해 동면 중인 반달가슴곰을 찾고 있다. 왼쪽부터 최주열·김선두·박영일 연구원. [산청=오종택 기자]

지난 1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국립공원. 바위들이 널브러진 해발 1200m의 고지대에도 봄기운이 완연했다.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피웠고 나뭇가지에 연녹색 새잎이 돋기 시작했다. 산새 소리도 한가롭게 들려왔다.

 그때였다. 하얀 헬멧과 검은 방검복(찔리거나 뚫리지 않도록 특수강으로 만든 옷)을 착용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연구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가파른 바위 위를 분주히 오르내리며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전파수신기로 반달가슴곰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신갈나무 고목 방향에서 “삐~ 삐~” 하는 뚜렷한 신호가 잡혔다. 이날 오후 1시45분, 산행을 시작한 지 약 4시간 만에 7년생 암컷 곰 RF-25의 동면 굴을 찾아낸 것이다.

 연구원들은 2개 조로 나뉘어 위·아래 양쪽에서 조심스럽게 동면 굴로 접근했다. 고목 바로 옆 1조는 마취총을 움켜쥔 수의사가 앞장섰다. 아래쪽에서 접근한 2조는 곰 퇴치용 스프레이를 들고 높이가 1m가 넘는 조릿대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테러 진압작전을 방불케 했다.

 무전기로 통화하며 30분 넘게 주변을 찬찬히 수색한 끝에 연구원들은 한쪽에 모여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이배근 동물복원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바위 아래 틈과 연결된 지름 1m 고목 구멍에 곰이 웅크리고 있다”며 “고목 뒤쪽은 낭떠러지여서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동면 굴이라는 설명이다.

 포획할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를 놓고 회의가 이어졌다. 발신기를 교체하고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포획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코앞까지 접근해야 마취총을 쏠 수 있는데, 곰의 얼굴에다 마취총을 쏘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아주 가까이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공격 당할 위험도 컸다.

 아침부터 서둘러 산에 올랐지만 결국 포획 계획은 취소하기로 했다. RF-25는 지난해 8월에도 포획한 적이 있어 발신기 교체가 시급하지 않다는 것도 이유였다. 연구원들은 동굴 입구에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철수했다.

 최근 갑작스럽게 기온이 오르면서 지리산 반달가슴곰들도 일찍 동면에서 깨어 활동을 시작했다. RF-25는 동면 굴에 남은 마지막 곰이었고, 복원기술팀의 이번 겨울철 작업도 끝이 났다. 복원기술팀은 이번 동면 기간 중 3마리를 포획해 건강 상태를 체크했고 새로 태어난 새끼 5마리도 확인했다. 하지만 등산로도 없는 험한 산을 헤치고 다니느라 연구원과 직원들은 넘어지고 다쳐 정강이가 온전한 사람이 없었다.

 한 연구원은 “보수도 적은 데다 곰을 포획하는 일을 하지만 위험수당도 없다”며 “자연과 동물을 대변하는 우리야말로 열정으로 버티는 NGO(시민단체) 활동가인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팀 상당수는 미혼이다. 제주도 출신으로 올해 36세인 양정진 수의사도 아직 결혼을 못했다. 그는 “8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열심히 곰에게 쑥과 마늘을 먹이고 있다”며 농담을 던졌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올해 10년을 맞았다. 지리산에는 야생에서 태어난 16마리를 포함해 35마리가 살고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북한·중국에서 들여온 것, 그리고 자체 번식한 것과 서울대공원에서 데려온 곰까지 총 40마리를 방사했다. 이 중 7마리는 질병 등으로 자연사했고, 7마리는 올무(올가미)에 걸리는 등의 사고로 폐사했다. 7마리는 자연 적응에 실패해 회수됐다.

 종복원기술원 장경희 박사는 “야생에서 태어난 곰이 다시 새끼를 낳으면 추적하기 어렵다”며 “털이나 배설물을 채취해 그 속의 DNA를 분석하는 간접 모니터링 방법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전자 분석 방법으로 곰의 가계도를 작성 중이다.

 종복원기술원은 2020년까지 곰 숫자를 자체 번식하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 존속 개체군’인 50마리로 늘리는 게 1차 목표다. 100~200마리는 돼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러시아·북한 등에서 들여와 방사를 계속해야 한다.

 이 동물복원부장은 “10년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100억원이지만 열매를 먹고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곰을 복원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면 훨씬 큰 이익이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곰이 사는 청정지역 쌀을 내세워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사람과 곰의 충돌로 인한 불상사 예방과 지리산 곰이 다른 산으로도 갈 수 있게 하는 생태통로 확보 등 남은 과제도 있다.

RF-25 … 곰 이름이 왜 이런 걸까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1999년 지리산에 야생 곰이 있다는 흔적이 발견되고, 2010년 가을 무인카메라에 야생 곰이 찍힌 게 계기가 됐다. 시범사업으로 2001년 가을 수컷 장군이·반돌이와 암컷 반순이·막내 등이 방사됐다. 반순이는 밀렵꾼에게 희생됐고, 막내는 사람을 너무 잘 따르는 바람에 자연 적응에 실패했다. 장군이와 반돌이는 꿀을 훔쳐 먹는 등 말썽을 피우다 붙잡혀 왔다.

 2004년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시작됐고 러시아 등지에서 들여온 곰에게도 국민으로부터 공모한 이름을 붙였다. 수컷은 천왕·제석 같은 봉우리 이름을, 암컷은 달궁·칠선·화엄 등 계곡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기존 이름을 다 없애고 ‘RF-25’처럼 관리번호만 붙여 관리한다. 야생에서 살아가야 할 곰이 가축·애완동물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RF-25’의 R은 러시아(Russia)산, F는 암컷(Female)을 의미한다. 국내산 수컷은 한국(Korea)과 수컷(Male)에서 따온 ‘KM’으로 시작되는 번호가 붙는다.

산청=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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