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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백화제방이 난세의 징조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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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철주
미술평론가

이 봄에 큰일이 터졌다. 애먼 꽃들 탓이다. 매화꽃 느긋하게 즐길 겨를은 아예 없었다. 개나리와 목련과 산수유와 진달래들이 앞다투어 펴버리거나 늦을세라 배꽃과 복사꽃마저 뒤죽박죽 피어나는 사태를 맞으니, 누구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며 머릿골을 싸매고 누구는 봄의 무례함을 나무라며 삿대질을 한다. 언론은 방방곡곡에서 마련한 꽃 축제가 날짜 박을 수 없이 오락가락하자 ‘하마나’ 하며 기다리던 꽃놀이 패거리의 수틀린 사연을 전하는데, 아무래도 꽃 장단에 다들 놀아난 꼴이다. 이게 꽃 멀미 나는 난리가 아니고 뭐겠는가.

 꽃들이 하는 짓을 보건대 4월 들머리에서 봄은 볼 장 다 봤다. 배알이 꼬인 꽃들이 섣부른 심통을 부렸다거나, 봄날을 허투루 써버리는 꽃들의 조급증이 성마른 세태와 닮았다며 “백화제방은 난세의 징조”라고 농처럼 말하는 이도 있다. 한꺼번에 피어난 꽃 때문에 이설과 요설이 난무하는 이 아름다운 요란, 신기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봄꽃들의 소란스러운 성정을 디지털 세상과 견주어 보려는 마음까지 들게 할까.

 ‘백화제방’이 무엇인지 따져보자.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셰르 식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동시다발적인 웅성거림’과 통한다. 해마다 매화가 ‘화괴(花魁)’로 군림하는 것을 두고보지 못한 꽃들의 총궐기는 절대지식의 부동자세를 흔드는 네티즌의 성질과 아귀가 잘도 맞는다. 꽃들이 디지털 세상과 접속하려는가 보다.

 꽃 그리운 마음은 꽃 보는 마음보다 간절하다. 비에 피고 바람에 지는 봄꽃의 짧은 황홀을 알기에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애틋하다. 3월 초만 해도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남도에서 올라오는 매화 소식에 귀를 세우고 안달했다. 2월에 도쿄에 갔다가 유시마 텐진에서 눈보라 치는 매화를 보는 행운을 맛본 에디터에게 괜히 퉁을 놓고 싶은 심정을 참았고, ‘매화꽃 피면 찾아갈게요. 시 한 수 읊어주세요’라고 적은 여교수의 문자에 마음 설렜던 게 그 즈음이었다.

 며칠 지나 화신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산청에 사는 화가는 소담스레 핀 홍매를 사진 찍어 보내와 내 맘에 불을 질렀다. 지난해 이름도 거룩한 정당매와 원정매와 남명매를 그이와 더불어 친견하며 매향에 취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에 들른 시인은 “벌써 지는 꽃도 있네요” 하며 부러 나의 애를 태웠다. 이게 다 춘분이 오기 전에 생겼던 사달이다. 어영부영하다 4월, 속절없이 낙화를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 깐에 수를 낸 게 사흘 전이었다. 서울보다 꽃 걸음이 더딘 곳을 골랐다. 청풍호로 차를 몬 게 맞아떨어졌다. 벚나무는 호수 주변에서 봉오리를 앙다물었고, 볕 좋은 비탈에서야 두어 낱의 꽃잎을 차려주었다. 매화는 용케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배알했다. 4월에 때 아닌 홍복이었다. 한벽루 아래 샛길로 접어들었더니 수십 그루의 백매, 홍매, 청매 향기가 달려들었다. 윤기 자르르한 암향이다. 매화 둥치를 따라 돌며 코를 벌름거렸다.

 단지 밖으로 나오다 살구나무를 봤다. 어라, 낯선 살구에서 매화 향기가 난다. 명찰을 달고 있어 살구로 알았지, 꽃의 생김새까지 빼다박은 매화 시늉이다. 느닷없이 민망했다. 그토록 매화 탐을 내면서도 여태 살구와 가려낼 눈조차 내게 없었던 게다. 매화가 위고 살구가 아래는 아닐 테다. 살구꽃도 봄의 한 소식을 전한다.

 돌아오는 길에 더 아래 지역인 청도 운문사를 들렀다. 이곳 벚나무는 노거수가 많다. 늙은 몸으로 피어올린 꽃이 음전하다. 풍상을 견뎌낸 연륜도 뿌듯하다. 몸뚱어리는 오종종하지 않은 수형을 이룩했고 잔가지는 자발스럽지 않아 벚나무에서 매화의 태가 난다. 자두나무를 보고는 또 놀랐다. 꽃잎이 얼핏 보면 청매 같다. 청매보다 꽃 색깔은 더 파랗다. 톡 쏘는 향기가 다르다면 다를까. 매화의 권좌는 동시다발 하는 꽃들 사이에서 흔들린다. 꽃들이 왁자글 피는 저마다의 이유를 뒤늦은 꽃구경에서 엿듣는다.

 곁가지 얘기 하나. 도량에서 겹겹이 붉은 꽃잎을 발견했다. 희한하다는 그 홍매다. 비구니 스님이 말간 얼굴로 지나갔다. 내가 물었다. “이 매화, 만첩홍매가 맞지요?” 스님의 답이 수줍다. “저는 꽃을 잊은 지 오래됐답니다.”

손철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