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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대중화의 길잡이 문고 붐-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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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우리 나라 출판계의 문고 붐은 독서의 대중화를 위해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보다 좋은 책』 등은 바로 독서를 대중화할 수 있는 지름길의 구실을 한다. 문고출간에 활기를 넣어주기 시작한 삼성문화문고는 최근 80권을 기록, 그 발행붓수만 해도 무려 4백30만권에 이르고 있다. 문고출판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 것인지 여기 좌담회를 통해 알아본다.
여=오늘날 독서의 문제는 출판의 문제와 아울러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지 않으려는 경향은 교양 있는 시민들로 이루어진 밝은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이상에 하나의 그림자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삼성문화문고의 출판은 이런 현실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인물전 많이 팔려>
최근 삼성문화문고는 80권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상태로 진행된다면 멀지 않아 1백권이 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서의 대중화란 관점에서 문고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먼저 이 교수께서는 이제까지의 삼성문화문고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이=이 문고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격이 교양 위주이면서 수준을 높였다는 점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팔릴 것으로 미루어 삼성문화문고의 기본방침이 일단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여=현재까지 가장 많은 발행붓수를 기록한 문고의 내용을 보면 역시 맨 처음 나왔던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을 선두로 토인비의 『대화』, 알퐁스·도데의 『월요 이야기』, 네루의 『세계사 편력』, 대니얼·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로마·클럽 보고서』 등인 것 같습니다.

<수준 높인 문고본>
이밖에 주목되는 것은 프랭클린 카네기 간디 슈바이처 등의 자서전과 고대중국의 인물을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같이 높은 수준의 교양서가 많이 읽히는 현상과 자숙전류가 독자의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요?
김=문고뿐만 아니라 일반서적의 경우에도 우리 나라 독서층의 대부분이 인생문제, 생활의 길잡이가 될만한 책을 많이 찾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여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고급인생론이 되겠군요. 최근 서점에 흔한 감상적인 개인의 수필집보다는 훨씬 고무적인 현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덕망 있는 인물의 전기가 비교적 인기 있다는 것은 독자의 사고가 건전함을 반영하는 징조라고 봐서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전기물을 즐겨 읽는 독자들의 동기는 둘로 나누어 살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남의 전기를 읽고 그대로 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출세를 하겠다는 현실적인 생각과, 다른 하나는 위인들의 전기를 읽음으로써 정신적인 고민이나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문명 진단서 인기>
여=거기에 덧붙여 전기물의 주인공들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하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더욱 어필했다고 생각합니다. 토인비 카네기 네루의 책들이 내용도 좋겠지만 독자들에게 알려진 지명도가 상당히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삼성문화문고가 아닌 일반 출판물의 경우도 지명도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더군요. 러셀의 자서전을 비롯해 쇼펜하워나 키에르케고르의 저서들이 3, 4개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봐서도 그 같은 경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그러나 전기물을 떠나서 삼성문화문고가 일반문고와 다른 점이라면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나 『로마·클럽 보고서』같은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수준 높은 사회가학 계통의 문고가 많다는 점이겠지요. 산업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대의 복잡한 양상을 생각할 때 이 같은 문명진단서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요.
김=계몽을 국민의 어떤 수준에 두고 하느냐가 문제겠지요. 저는 바람직한 삼성문화문고의 수준을 대학을 나온 사람에게 적당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대학을 졸업하는 고등교육 인구가 수만을 헤아리지만 직장인이 되었을 때 음주와 잡기에만 골몰할 뿐 남는 시간에 신문이나 제대로 읽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나는 만약 이들이 여유 있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수준 높은 독서를 한다든지 영화·오페라 감상 등의 문화적인 생활에 눈을 들릴 경우 이른바 양식이라는 것이 생겨 모든 사회의 부조리나 부정을 규제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성문화문고의 기본방향도 이들을 문화인으로 이끌어 올리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필자 발굴>
이=저 역시 동감입니다. 수준 높은 교양서적을 읽는 독자층이 넓어지면 우선 그 독자층에는 의식이 생겨 사회의 현상이나 사물을 보는 예리한 안목이 형성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안목이 사회의 전체적인 현상을 규제할 때 건전한 사회기풍이 생기는 것이지요.
여=건전한 의식을 가진 시민계급의 양성과 관련, 삼성문화문고 중 번역본이 지나치게 많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시민 계급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외국의 사상이나 문물을 그대로 전달하는 번역보다는 우리의 처지를 잘 아는 필자가 다시 집필, 우리실정에 맞도록 고쳐 소개하는 것이 정도일 것 같습니다.
김=그러나 그때마다 합당한 필자를 발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울 것 같지는 않군요. 이점 문고를 출판하는 측에서나 독자를 위해서도 불행한 현실이라면 현실이지요.

<한국적인 것 필요>
이=알맹이가 있게 방향감각을 설정하고 집필을 의뢰했을 때 바람직한 수준의 책을 쓸 수 있는 학자가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저는 해설적인 성격을 가진 외국의 저술들이 많이 소개돼 일반에게 읽힌다고 행서 크게 무리가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여=이밖에 삼성문화문고 중에서 상당한 비중을 치중하고 있는 국학관계 문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물론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개발이 현재로서는 더욱 필요한 단계지요. 그러나 독자층에서 한국학에 대한 기본바탕이 안돼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또 하나 한국학 관계문고들의 문제점은 문고 같은 가벼운 책에 전문적인 논문 이상으로 어려운 내용을 싣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이 원래 문고본의 설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번역·저술 절반씩>
이=한국학과 관련, 쉬운 내용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삼성문화문고를 비롯한 여러 문고본에 외국인에 대한 전기가 많았지만 한국인중에서도 새로운 인물을 많이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화한다는지 미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고민이나 약점을 노출시키면서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지요. 전기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독자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여=6·25동란 이후나 지난 10년 전보다는 최근에 독서층이 확대된 것만은 사실일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같이 증가한 독서층에 삼성문화문고가 좀더 훌륭한 책을 보급하고 또 독자들이 더욱 읽어야할 분야의 서적이 있다면 무엇이겠읍니까?
김=저는 번역과 저술의 비율이 전반정도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서의 경우에는 세계적인 문제를 다룬 사회과학계통의 서적이 주류를 이뤄야 하겠지만 우리 나라의 현장과 관련짓기 위해서는 착실한 해설이 덧붙여졌으면 합니다. 한편 독자들이 조그만 문고본일지라도 책을 사랑하고 읽는 풍토를 마련해주기 위해 저자가 책에다 직접 사인해주는 사인 본드 독자와 저자를 밀착시키는 한 방법으로 제안하고 싶습니다.

<두꺼워진 독자층>
이=도의문화의 향상이 문고발행의 근본 취지인 만큼 이에 상응하도록 국민의 교양을 높이고 건전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책들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여=내용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대학생들간에는 문고에 필요이상으로 어려운 한자가 많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더군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체제면에서 앞으로 1백권이 넘으면 내용이 비슷한 문고는 서로 번호를 나란히 해서 성격을 뚜렷이 했으면 합니다. 또 앞으로 21세기를 맞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예언적 성격을 가진 사회과학계통의 서적을 분량에 관계없이 시리즈로 소개하는 것도 독자에게 좋은 서비스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참석자>
사회=여석기
김원용(고고학·서울대 교수)
여석기(영문학·고대교수)
이기백(한국사·서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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