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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생명보험 자살면책기간 늘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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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경룡
서강대 명예교수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정책당국은 정책 입안에 있어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동양그룹 사태, 개인정보 유출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도 부처별로 책임과 비난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거나 뒤늦게 대책을 내놓는다.

 그나마 ‘사후약방문’이라도 내놓으면 다행이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2년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28.1명으로 불과 20년 새 3배로 급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5명)의 2배를 넘는 수치로, 하루에 39명꼴로 자살하고 있음을 뜻한다. 덕분에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8년 연속으로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동안 정책당국에서 제도적인 개선대책을 내놓았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2013년 우리나라가 자살 예방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일본의 60분의 1에 불과한 47억원이다. 복지예산 부담이 커지고 있다지만 그래도 너무 적다. 꾸준히 예산을 늘려 다방면에서 자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편으론 제도적으로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로 생각해볼 게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기간’이다. 영화 ‘수상한 고객들’엔 생명보험에 들고 2년이 지난 뒤 자살해 보험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보험왕이 되고 싶은 주인공 보험설계사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며 보험 가입을 권한다. 물론 코미디 영화지만 여러모로 안타까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양극화와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예전처럼 가족에게 도움을 받기 어려워졌다. 국가의 복지 지원이 늘고 있다지만 ‘세 모녀 자살’처럼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는 사람도 아직 많다. 이 가운데 일부는 영화처럼 남은 가족을 위해 생명보험에 들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보험연구원의 보고서를 봐도 생명보험 가입자의 자살률은 2년의 면책기간이 지난 후 증가 추세를 보이며, 이는 면책기간이 생명보험 가입자의 자살 여부나 시점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에 앞서 오랜 기간 자살률 1위 자리를 차지했던 일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매년 국가 차원에서 3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자살미수자의 정신치료, 자살유족 지원, 일시피난소 제공, 우울증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다시 3년으로 연장했다. 그 결과 1998년 23.9명이었던 일본의 자살률은 2011년 19.7명으로 낮아졌다.

 우리도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명보험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오히려 자살률을 높이는 역할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에 고려할 일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게끔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보험업계도 보험금 지급 부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난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예방 역할에 나서야 한다.

이경룡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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