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의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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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워드·휴즈」.
그는 신화적인 안개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엄연히 생존한 유명인이면서 20년 가까이 자신의 모습을 한번도 드러낸 일이 없다. 그의 자산은 1965년 미국의 대표적인 경영잡지「포춘」의 시산에 따르면 14억3천2백만「달러」. 그 3년 뒤인 1968년 1월8일자「뉴스위크」지에 의하면 20억「달러」. 의심할 바 없는 세계「톱·클라스」의 대부호이자 기업인이다.
그는 대회사 2, 자회사 4개를 갖고 있지만 사장인지, 회장인지 그의 지위는 도무지 분명치 않다.
다만 사주인 것만이 틀림없다. 이처럼 그가「베일」에 싸여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타인의 자본은 단 1「달러」도 자신의 기업에 들여놓지 않았다. 전부-그러니까 회사의「코피」잔 하나까지도 그의 소유로 되어있다.
따라서 증권시장에도 그 회사의 주는 나타나지 않는다. 매년「포춘」지가 발표하는 미국대기업 5백 개사「리스트」에도 빠져있다. 어느「주식편람」을 보아도 없다. 「휴즈」혼자서 주주이며 사주다. 경영방식도 1인 기업답게 속전속결주의.
하루는 TV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화면이 시원치 않았다. 그는 수리공을 불러들였다. 수상기에는 이상이 없었다. TV방송국의 고장 때문이었다. 「휴즈」는 지체없이 말했다.
『그 TV국을 당장 사버려!』그의 아버지도 부호였다. 그는 재산으로만 몇백만「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의 부는 오로지 그가 불려놓은 것이다. 18세의 나이에 그는 유산을 눈사람처럼 굴릴 줄을 알았다.
행운은 2차 대전. 「휴즈」의 회사는 군수「메이커」로 활약한 것이다. 대전말기에는 7백50인을 공수할 수 있는「매머드」수송기까지 만들어 냈었다.
대전 후엔「미사일」·인공위성부품 등을 납품했다. 군수품만은 아니고, 한때는 TWA 항공회사·유수의 양조장·RKO영화회사 등에도 손을 댔었다.
여성편력도 많은「가십」을 만들어냈다. 당세 유명 여우들과의 화제는 끊어지는 날이 없었다.
올해 그의 나이는 70세. 그「휴즈」신화에 기어이 부음이 들리고 있다. 물론 그 동안의 병석도 비밀에 싸여 있었다.
오늘의 미국에는 이런 전설적인 부호도 몇이 없을 것 같다. 「휴즈」의 신화는 곧 미국적인 신화의 마지막「심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을 위한 부의 축적이 용납되던 시대는 자본주의의「쇼·윈도」인 미국에서도 지나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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