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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저소득·고령일수록 '극단 선택'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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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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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12년)의 2.3배에 달한다. 웬만큼 사는데 왜 그럴까. 보건복지부가 자살실태조사를 조사한 결과를 1일 내놨다. 전국 단위의 대규모 실태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복지부는 자살 사망자와 시도자 분석, 유서 분석과 유족 면담 등의 입체적 방법을 동원해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특성은 ‘남자·이혼·저학력·저소득·정신질환·음주’로 압축됐다.

 복지부는 우선 1992~2011년 건강보험 진료 자료를 활용해 자살 사망자 8305명을 분석했다.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이상 자살률이 높았다. 나이가 많을수록, 소득과 학력이 낮을수록 자살자가 많았다. 특히 이혼·사별한 사람의 자살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기혼자)보다 높다. 남자는 기혼자의 2.1배, 여자는 2.5배에 달한다. 충남의 소도시에 살던 50대 남성은 고물상을 운영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형편이 안 좋다 보니 아내와 별거하다 2012년 이혼한 뒤 혼자 살았다. 그러다 자녀와 돈 문제로 다툰 후 술을 마셨다. 그는 “세상 살아 뭐 하나 까짓 것, 내일 볼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였고 그날 밤 목숨을 끊었다.

 이번 조사를 맡은 안용민 서울대 의대 교수는 “남자의 자살 기도 연령은 주로 중장년층인데 반해 여자는 젊은 층이 많다”며 “젊은 여성은 대인관계 등 충동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반면 중장년층은 사회·경제적 문제나 질병 같은 무거운 짐에 짓눌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2007∼2011년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 신세를 진 8848명을 추적 조사했다. 44%는 음주 상태에서 시도했다. 한 번 시도한 사람은 또 일을 저지른다. 236명은 끝내 세상을 떠났다(2012년 말 기준). 연간 10만 명당 약 700명이 자살했는데 이는 일반인 자살사망률(28.1명)의 25배에 해당한다. 충남의 80대 남성은 네 번의 시도 끝에 2012년 결국 숨졌다. 다치는 바람에 거동을 제대로 못하는 데다 만성질환의 고통을 이기지 못했다. 죽기 두 달 전부터 농약을 마시기도 하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8305명은 숨지기 10~12개월 전 정신과적 질환 때문에 병원을 이용한 경우가 그 전보다 50% 이상 증가한 것이 확인됐다. 한 40대 남성은 이혼 후 고령의 노모, 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뚜렷한 직업 없이 공사현장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평소 어머니와 대화가 거의 없었다. 2012년 어느 날 돈 문제로 아는 사람과 갈등을 빚다 목숨을 끊었다.

그의 가족을 인터뷰한 결과 평소 분노조절이 잘 안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좌절감·우울증세로 고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정신과 치료뿐 아니라 소화기계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47% 늘었다.

 연구진은 사망자 72명의 유서를 분석하고, 유가족을 심층 면담했다. ‘심리적 부검’이다. 이를 토대로 사망 유형을 ▶급성 스트레스 유형 ▶만성 스트레스 유형 ▶적극적 자해·자살시도 유형 ▶정신과적 문제 유형 등 네 가지로 구분했다. 여기서도 정신과적 문제 유형이 22건(28.6%)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전국 17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은 자살 시도자 2277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도 비슷했다. 이들 가운데 37.9%가 ‘우울감 등 정신과적 증상’을 꼽았다.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31.2%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경제적 문제’(10.1%), ‘고독’(7.1%), ‘신체 질병’(5.7%) 순이었다. 복지부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범부처 차원의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올해 안으로 수립할 계획이다.

세종=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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