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 그게 바로 호텔 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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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기가 낫고, 저건 저기가 낫고 ?. 각각의 기준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아마 전체적인 수준에서 한국 최고(最高)의 호텔을 꼽으라면 신라호텔을 가장 많이 언급하지 않을까. 글로벌 호텔 브랜드 프리미엄 없이도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인사가 가장 많이 찾는 데서도 신라호텔의 위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서비스가 큰 역할을 했다. 하루에도 수백명의 고객과 마주하는 이인철(43) 서울신라호텔 객실팀장에게 신라호텔의 은밀한 서비스 얘기를 들었다.

-신라호텔이라고 하면 서비스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맞다. 전에는 호텔리어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 원래 서비스로 유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각 기업이 앞다퉈 직원 서비스 교육을 하려는데 마땅히 할 곳이 없었다. 우리 직원들이 강사로 많이 불려갔다. 지금도 우리 호텔은 서비스 교육이 철저하다. 업장별 운영 시간 같은 호텔 관련 정보부터 고객 응대 매뉴얼까지 전 직원이 숙지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시험을 치르는데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재시험을 봐야 한다.”

-지난해 리뉴얼 후 고객이 기대하는 눈높이가 더 높아졌을텐데.

“그렇다. 시설만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동선과 습성까지 분석해 더 편리한 호텔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침구류도 그중 하나다. 재개관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일본 어느 호텔 베개가 안락하다는 얘길 듣고 담당 직원을 곧바로 보냈다. 이를 반영해 다시 제작했다. 휴관 동안 훨씬 더 바빴다.”

-좋다는 외국 유명 호텔에 많이 가보겠다.

“출장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여행갈 때도 그 도시에서 가장 럭셔리하거나 새로 문을 열어 화제가 된 호텔을 골라 묵는다. 솔직히 출장비는 빤하지 않나. 그 돈으론 어림도 없다. 내 돈 쓰는 거지. 출장 때마다 마이너스다. 하지만 투자라고 생각한다. 방콕 휴가갔을 땐 럭셔리 컬렉션과 쉐라톤·세인트레지스에 하루씩 머문 적 있다. 외국 가서도 관광지보다는 호텔 보러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

-뭘 보려고.

“시설과 서비스 모두 본다. 호텔 시설이나 직원 유니폼을 보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얼마나 성의 있게, 즐겁게, 또 빠르게 일을 해결하는지 본다. 그게 호텔 수준이니까. 방콕 럭셔리 컬렉션에 묵을 때였는데 갑자기 급하게 다른 도시로 가야 해서 비행기 티켓을 요청했다. 오후 1시였는데 15분 만에 티켓 지불까지 끝냈다. 그게 호텔리어의 능력이고, 호텔의 가치를 말해준다.”

① 이인철 팀장이 최고의 호텔로 꼽은 싱가포르 래플즈. 시설은 낡았지만 직원이 처음 본 고객 얼굴을 곧바로 기억할만큼 서비스가 뛰어나다. ② 지난해 호텔 리뉴얼 기념 행사에 참석한 이인철 팀장.

-가본 곳 중에서 최고의 호텔을 어디였나.

“싱가포르 래플즈다. 싱가포르의 문화 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역사가 깊은 호텔이다. 2003년 명성만 듣고 갔다가 처음엔 솔직히 실망했다. 배가 볼록하게 나온 30인치 브라운관 TV가 보였다. 이렇게 낡은 호텔의 1박 비용이 왜 70만~80만원이나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6시간 만에 이유를 알았다. 호텔 구조가 독특해 안에서 길을 잃었는데 처음 보는 직원이 내 이름과 방 호수를 알더라. 심지어 어둡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직원이 고객을 알아보는 게 훌륭한 서비스란 건 누구나 알지만 그걸 실행하는 건 정말 어렵다. 그런 차이가 호텔 수준을 가른다. 솔직히 세상이 발전할수록 이런 부분은 더 힘들다. 디지털 세상인데 호텔은 여전히 사람을 상대로 하는 아날로그 세상이기 때문이다.”

-호텔리어로서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노력이다. 내가 병아리 초년생 때였다. 한 운동 선수가 우리 호텔에 자주 왔다. 그때 객실 열쇠는 카드 키가 아니라 정말 열쇠였다. 호텔 나갈 때 프론트에 맡겼다가 들어올 때 이름·호수 얘기하고 찾아갔다. 그 선수 얼굴이 보이자마자 선배가 조용히 열쇠를 챙겨줬고, 그 모습에 그 선수가 감동하더라.그때 배웠다. 나도 고객이 체크인할 때 얼굴을 기억했다가 선배한테 배운대로 했다. 감동하더라. 다만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이름과 얼굴을 외울 때 한 가지 특징을 찾아내 같이 기억하는 거다.”

-유명인사가 많이 찾는다. 기억에 남는 고객은 없나.

“할리우드 스타 등 많은 유명인은 호텔에 오기 전 요구사항을 알려온다. 한 헐리우드 영화 배우는 아령은 어떤 무게, 운동 기구는 어떤 종류,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정해준다. 영화 속 위험한 액션 장면을 직접 소화한다더니 역시 그냥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금융인인 모회장도 돈이 그렇게 많은데, 정말 소탈하다. 비서 한 명 없이 가방 메고 혼자 체크인, 체크아웃 다 한다.”

-베테랑 호텔리어도 당황할 만큼 황당한 고객의 요구는 혹시 없었나.

“얼마 전 일이다. 한 고객이 변기를 높여 달라는 거다. 그것도 당장. 현재 객식 변기 높이가 45㎝인데 ‘너무 불편하다’며 55~60㎝로 맞춰달라고 했다. 처음엔 변기 회사를 불러 뜯어내고 다시 넣을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고객 한 명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없더라. 수소문해보니 장애인을 위한 변기 커버가 있었다. 높이가 10~15㎝였다. 이거다 싶어 논현동 한 인테리어 전시장에 딱 한 개 남아 있는 걸 퀵 서비스로 받아 설치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결할 때 보람을 느낀다. 고통 없인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도 배우고.”

-20년 가까이 호텔리어를 하고 있는데, 호텔의 매력은 뭔가.

“호텔 입사 전 다이나믹한 삶을 동경했다. 호텔은 정말 매일매일이 다르다. 하루도 똑같은 일의 반복이 없다. 매일 고객이 바뀌기 때문이다. 정말 역동적이지 않나.”

-왜 신라호텔이었나.

“태어나서 입사지원서를 딱 한 번 썼다. 그게 신라호텔이다. 당시 국내 최고의 호텔이었다. 대우도 좋았다. 최고의 직장에 가고 싶은 건 모두 똑같을 거다.

-호텔리어에게 꼭 필요한 건 뭘까.

“당연히 외국어다. 고객과 대화할 때 외국어는 필수다. 영어는 기본이고 이젠 일본·중국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호텔엔 내부 교육원이 있다. 서비스 교육뿐 아니라 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 강좌도 있다. 본인 근무 시간에 따라 수업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데 만약 오후 2시에 출근이라면 오전에 수업을 듣고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업무를 시작한다. 또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 만큼 좋은 인성과 소양, 겸손한 자세도 필요하다. 어떤 얘기도 들어줄 수 있는 오픈된 자세도 중요하다.”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이인철(43)
1971년 충남 홍성 출생
1993년 대전실업대학(현 우송정보대학) 관광영어통역과 졸
1996년 호텔신라 입사
1996~2008년 게스트 SVC, 프론트 데스크 근무 후 세일즈 매니저
2007년 세종사이버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졸
2007년 연세대 E-MBA(Executive MBA) 수료
2008~2009년 중국 지역 전문가 파견(심천대 연수)
2009~2011년 프론트 오피스 매니저
2012년~현재 객실팀장


사는 곳: 남산타운
근무하는 곳: 서울신라호텔
운동하는 곳: 국립극장 옆 남산 조깅 코스, 집 근처 피트니스 클럽
장보는 곳: 광장시장,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자주 가는 식당: 우래옥(주교동), 평양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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