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근세는 더 내릴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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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봉급생활자들이 물고 있는 갑근세는 지금보다 더 내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 수년간의 징수실적이 그것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지난해만 해도 달마다 어김없이 떼어간 갑근세가 7백76억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초 예산징수목표 2백99억원에 대해서는 실로 2.6배가 넘는 것이다.
그뿐인가, 예상보다 너무 잘 걷히니까 서둘러 짜낸 추 갱 목표 6백67억원까지도 넘어서서 1백9억원이나 초과 징수되었다.
이 유례없는 초과징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리 그 동안 고용과 납세 인원이 늘고, 명목임금이 올랐다 해도 이 현상을 누군들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분명 현행 갑근세 제도는 어딘가 잘못 되어 있는 것이다. 초과 징수가 어느 한해의 이변이라면 혹은 경기 예측의 잘못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또 현재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거나 봉급생활자들이 그 많은 세금을 내고도 생활에 쪼들리지 않는다면 초과징수라는 이변은 잦을수록 좋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근로소득자들은 다른 납세자들, 예컨대 기업부문의 조세부담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훨씬 불리하다. 기업에 대해서는 우선 이익이 적게 나면 그만큼 형편에 따라 세금이 줄어든다.
또 모든 운영유지비는 물론 돌발적이거나 불가피한 경비까지도 배려하여 세금을 안문다. 그러고도 수지가 안 맞으면 기업은 값을 올려 적자를 면하는 길이 있다. 그러나 가계는 어떤가.
몇 푼 안 되는 봉급은 물가가 오르든 말든, 지출이 늘든 말든 달마다 꼬박꼬박 한푼 에누리없이 떼어 내는 것이다. 가계의 유지비가 아무리 늘어나도, 식구가 늘어 교육비다, 의료비다 하여 무더기로 씀씀이가 늘어나도 내는 세금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기업처럼 달리 적자를 메울 길도 없는 대부분의 월급장이들에게는 이 갑근세가 지긋지긋하다고 해서 잘못일까. 기업과 가계가 어떻게 같이 다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다. 명목상으로는 각종 공제제도의 채택으로 기초적인 유지비를 고려하고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자의 논리는 합당치 않다. 그간의 경제개발로 기업의 성장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다. 오히려 이제는 가계도 보호해야 할 때다. 4차 계획의 방향수정이나, 소위 사회개발에 대한 정부의 의욕도 이런 인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특히 높은 「인플레」가 지속될 때에는 가계보호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후자의 경우, 현행제도의 채택자체만으로 하나의 진전이기는 하나 아직도 이름뿐인 감이 없지 않다. 기초 또는 소득공제는 물론 부양가족 공제도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이다. 모든 공제를 다 포함해도 실질생계비를 훨씬 밑돌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세법개정 때도 이런 문제들이 시정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대단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세수확보의 차질을 이유로 끝내 열화 같은 기대를 차갑게 외면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세수우려는 이제 유례없는 초과징수의 결과 근거 없음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이제 세정 당국이 가장 성실한 납세자인 봉급생활자에 대해 보답하는 길은 현재의 각종 공제액과 종류를 현실에 맞게 늘리고 세율을 훨씬 내리는 것뿐이다. 이는 사회적 형평과 안정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정부의 깊은 배려와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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