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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리포트] 으~ 냄새 … 엄마, 학교에선 화장실 안 갈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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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엄마! 나 학교 화장실에선 절대로 응가 안 할래.”

서울 종로구 S초등학교 1학년 이모(7)군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내던지고 허겁지겁 화장실부터 찾는다. 입학 일주일 만에 학교 화장실은 못 가겠다고 선언한 이군에게 지금도 이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어머니 정모(32)씨는 “학교에 직접 가봤더니 좌변기는 하나도 없고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보는 변기뿐이었다. 낙서도 가득하고 조명이 어두워 20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와 다르지 않아 놀랐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이가 변비나 방광 질환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강남구 H중학교에 다니는 장모(15)군에게 학교 화장실은 ‘가서는 안 될 곳’이 된 지 오래다. 장군은 “학교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 볼 일을 안 보려고 오전 내내 물도 안 마신다. 용변을 보러 집에 일찍 가야 하니 방과후 활동도 제대로 못한다”고 말했다. 장군의 아버지(45)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학교 화장실이 이 지경이라니 부모들이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희대 비뇨기과 이형래 교수는 “성장발육기에 용변을 억지로 참고 물을 안 마시는 습관이 반복되면 방광이 과도하게 팽창해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고 심하면 방광염에 걸릴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한국은 2012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에 들어갔다. 하지만 학교 화장실 시설이 열악하고 지저분해 학생들이 볼 일도 제대로 못 보는 일이 허다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우수한 교육시스템을 종종 칭찬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화장실을 비롯해 기초적인 학교 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서울시민 1만8000명을 상대로 가장 개선이 시급한 학교 시설을 물어봤더니 화장실이 27%로 냉난방시설(35%)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대다수 가정이나 공공시설 화장실엔 좌변기뿐 아니라 비데까지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음식점·카페·마트는 화장실이 더러우면 손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호텔 같이 깨끗한 화장실도 많아졌다. 그러나 정작 위생과 질서 개념을 배우는 학생들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머무는 학교 화장실만 가장 후진적인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실제로 서울 지역 초·중·고 화장실의 48.5%는 쪼그려 앉아 사용하는 일본식 수세식 변기인 화변기(和便器)여서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중랑구 J중학교 여자화장실에 들어서자 입구부터 악취가 코를 찔렀다. 천장에 달린 전등 6개 중 절반이 고장 나 어두컴컴했다. 창가에 설치된 환풍기는 녹슨 채 작동하지 않았고, 바닥엔 물이 흥건했다. 휴지와 비누도 찾을 수 없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문짝이 부서지고 교실이나 급식실까지 악취가 풍겨 시설 보수가 시급하지만 예산이 없다”고 난감해했다.

 실제로 시 교육청의 학교 화장실 개선 예산은 2012년 186억원, 2013년 131억원, 올해 103억원으로 급감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무상급식 예산이 352억원 늘었고 만 5세까지 학비를 대주는 누리 과정에 3154억원이 추가 투입되면서 학교시설 예산은 줄었다”고 말했다.

 예산이 줄다 보니 서울 지역 1300여 개 학교 중 지난 10년간 한 번도 개·보수를 하지 않은 학교가 600여 곳이다. 화장실 건물 동(棟) 수로 치면 3400여 곳이나 된다.

 학교 화장실 관리도 부실하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화장실은 연 2회 이상 정기점검을 받고, 관리인은 3년마다 1회 이상 위생·시설관리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교환경개선지원센터가 지난해 서울 지역 학교 화장실 관리인 850명을 설문조사 했더니 86%가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 센터 이창국 대표는 “미국·독일은 좌변기에 일회용 커버를 깔 정도로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는데 우리 학교들은 용역 인력 한두 명이 하루 두세 시간 동안 학교 전체를 청소하다 보니 화장실 청소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 대표는 “20여 년간 화장실 문화가 전반적으로 발전했지만 유독 학교 화장실은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다”며 “예산 확보와 시설 개선 등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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