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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각형과 이등변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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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한·중관계는 역대 최상의 수준이다.” 베이징에서 각각 따로 만난 한·중·일 세 나라 외교관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말이다. 그런데 같은 말을 하면서도 심중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이라기보다 이심동성(異心同聲)이라 해야 할까.

 중국 외교관의 얼굴엔 득의의 미소가 흘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가장 중시하던 한국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던 중국으로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의 한·중관계 개선을 뿌듯하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한·중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든 변수는 일본”이란 분석도 빼놓지 않았다. 일본의 그릇된 역사인식에 대해 한·중이 공조하는 모양새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안중근 기념관 설립을 가능케 해준 사람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라고 말했다. 일본의 입장을 배려하느라 표지석 설치조차 부담스러워하던 중국 정부가 갑작스레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일본이 자초한 결과라는 얘기였다. 모처럼 형성된 ‘한·중 vs 일본’의 구도에 만족감이 넘쳐났다.

 일본 외교관은 “일·중관계가 꽉 막혀 요즘 일거리가 별로 없다”고 푸념했다. 그의 말에선 경색 일로인 한·일관계에 대한 초조감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일본과 힘을 모아 중국이란 거인에 맞서야 할 한국이 중국 편에 너무 밀착한 것 아니냐”는 게 그의 논리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역시 한국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한·미·일 정상회담의 성사에 공을 들이고 사실상의 한·일 양자 정상회담으로 의미부여를 한 데서도 그런 초조함이 읽힌다.

 얼핏 보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몸값이 상한가로 치솟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 외교관은 “마냥 좋아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라며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얼마 전 환구시보에서 읽은 글을 떠올렸다. 양레이(楊雷) 난카이대 교수는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이등변 삼각형에 비유했다. 꼭짓점에 한·중·일 세 나라가 있고 그중 한·중 간 거리가 한·일, 중·일 간 거리보다 짧은 삼각형이란 얘기다. 그는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만 역사인식 문제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므로 현재 구도가 오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제는 이런 구도가 과연 우리 국익에 부합하느냐는 점이다. 동북아 정세와 역학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에 가장 바람직한 건 정삼각형 구도일 것이다. 그래야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커지고 운신의 공간이 넓어진다.

 북서풍이 언제 어떻게 동남풍으로 바뀔지 모르는 게 국제 정세다. 한쪽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풍향이 바뀔 때 쉬이 대처하기 힘들다. 과거사 문제에는 원칙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하되 갑작스러운 정세 변화에 대비해 여지를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한 건 인간 세상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이치 아닐까.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