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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마트비옌코 "러·서방 상호의존 … 제재는 모두 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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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을 지켜보는 눈눈눈 지난 3월 2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시 독립광장에서 개최된 반 러시아 집회에서 시민들이 연사의 연설에 집중하고 있다. [AFP/Eastnews]

1983년 휴즈 할레트와 안드리스 브란드스마는 ‘대소련 제재조치가 얼마나 유효할까’라는 논문에서 “ 전면적 무역 제한 조치는 소련 경제에 대한 유럽의 영향력이 낮아지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썼다. 8년 뒤 소련이 붕괴되자 ‘경제제재가 악화일로인 소비에트 경제에 큰 효과가 없다’는 그들의 예상은 맞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허프바우어·쇼트·엘리엇은 저서 『다시 생각해 본 경제 제재』에서 소련 붕괴의 원인이 경제 제재보다는 소련 내부의 비효율성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21일 러시아의 크림 합병 문서에 서명한 뒤 연설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금 상황이 당시와 비슷하다고 본다. 그는 3월 18일 양원 의회 연설에서 “일부 서방 정치인은 제재조치로 심각해질 것이라고 겁주고 있습니다. 러시아 내 사회·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국민이 불만을 터뜨리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걸까요?”라고 물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이미 강력한 경제제재를 여러 번 겪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냉전 시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기술과 장비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했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런 제재가 공식적으로는 중단됐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 의장은 “러시아와 서방은 상호의존적이어서 서방 경제가 타격받지 않으면서 러시아만 어렵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유럽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유럽은 러시아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2012년 무역 규모가 2675억 유로(약 398조원)이었다. 미국은 5위인데 그에 앞선 중국과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와의 격차가 크다. 양국 간 무역 규모도 189억 유로(약 28조원)다.

지난 3월 18일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며 거대한 게임을 시작했지만 이 게임엔 판돈과 위험이 크게 걸려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세르게이 벨리아코프 러시아 경제부 차관은 “현 상황은 명백히 위기 신호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제재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효과가 있을까.

국제 비즈니스 업계는 러시아 관련 사업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본다. 무디스(Moody’s)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이미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2014년 초 현재 대외부채가 러시아 은행들은 2150억 달러, 기업들은 4380억 달러다. 2년 안에 러시아 은행들은 880억 달러를, 기업들은 1820억 달러 이상을 상환해야 한다.

러시아 기업들의 국제 금융시장 진출도 막힐 수 있다. 지난 수년간 러시아 기업들은 영국의 런던증권거래소(LSE),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에 주식을 상장해 왔다. LSE에선 자본금 5000억 달러 규모 이상인 53개 러시아 기업 주식이 거래된다. 주식 상장 취소나 연기도 가능하다. 분기당 최대 500억 달러의 자본 유출도 가능하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올 1분기에만 자금 이탈 규모가 700억 달러(약 7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전문가는 “시장 반응이 중요하다. 세계 시장과 투자자들은 규제가 별것 아니라도 불리하다고 해석하면 러시아 자산이 빠져나가기 시작할 수도 있다 ” 고 논평했다.

크림 독립 투표가 있던 2014년 3월 16일 크림의 세바스토폴 흑해함대의 함정을 배경으로 한 남성이 러시아 기를 흔들고 있다. [DPA/Vostock-Photo]

러와 군사협력 끊으면 EU 손해 … 프랑스는 막대한 위약금 물어야

러시아 투자은행인 VTB 캐피털 그룹 전문가는 베도모스티지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러시아 국내 투자·소비가 성장을 멈출 수 있다. 민간산업 투자는 2013년에 2% 늘었지만 2014년엔 3%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고용과 임금에도 영향을 미쳐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VTB 캐피털도 2014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을 1.3%에서 0%로 하향 조정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에 대한 제재는 복잡하다. 지난해 ‘가스프롬’은 유럽 천연가스 소비량의 30%를 공급했고, 러시아 기업들은 석유 소비의 27%를 공급했다. 그래서 지난 3월 20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에 더 강경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높은 의존도를 단번에 줄일 수는 없다. 그러나 목표를 진지하게 설정한다면 3~5년 사이 유럽 시장에서 러시아 에너지 기업의 입지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 미국이 자국산 LNG 수출을 자유화하고 셰일오일 수출을 늘리면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유탄은 엉뚱하게 우크라이나가 가장 많이 맞는다. 가정·산업용 가스만 문제가 아니다. 유럽행 러시아 가스관이 지나는 우크라이나는 통관료로 연 40억 루블(약 1193억원)을 버는데 그게 없어질 수 있다. 러시아 가스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가스 빚 20억 달러(약 2조1000억원)가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지원금을 빌리면 그 돈으로 러시아에 빚을 갚아야 할 판”이라 고 말했다. 또 콘스탄틴 자툴린 CIS국가연구소 소장은 “우크라이나의 산업 중심지인 동남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러시아와 긴밀하게 경제협력을 했는데 관계가 끊어지면 우크라이나 경제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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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툴린 소장은 나아가 “서방의 경제제재가 ‘오프쇼어 엘리트(역외지역으로 탈세하는 엘리트)’라 불리는 러시아 정·재계 인사 개개인에게만 타격을 주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제재의 목적은 ‘제5열’ 사람들이 러시아 정부를 압박해 서방 요구를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러시아는 장·단기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러시아 정부는 전략 기업들의 대외부채 상환에 대비해 예비 자금을 준비 중이다. 아시아와의 경제통상 확대도 모색한다. 홍콩 소재 투자 부티크 ‘유라시아 캐피털 파트너스’의 경영 파트너 세르게이 명은 “아시아는 러시아에 유럽 시장을 충분히 대신할 만한 시장이 될 수도 있다”며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석유·가스, 금속, 화학제품, 식료품 등 러시아 주력 수출상품 소비 시장으로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2009년부터 러시아 최대 교역국이 됐다. 2013년 현재 교역 규모 890억 달러다. 중국은 또 러시아를 도울 용의가 있다. 크림 사태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신중했지만 경제 차원에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제재를 러시아가 견뎌낼 수 있게 적극 도와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 등 대안 협력국들과의 협력 강화도 있다. 특히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극도로 경계한다. 일본 정부에 자문하는 한 전문가는 “아베 총리의 일본은 대러 협력에 큰 기대를 건다. 러시아 극동에서 일본 기업들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러시아가 중국의 원료 기지가 되지 않게 돕는 것도 목표”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 특히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를 구축할 목적으로 주요 8개국(G8)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소치올림픽에 참석했다.

러시아 제재를 발표하는 오바마 미 대통령.

그런 측면에서 미국은 심각한 지정학적 선택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의 고립을 심화시키기 위해 일본과 한국에 계속 압력을 넣어야 할지, 러시아가 중국 품에 안기지 않도록 아시아 우방이 상징적 제재만 하도록 허용할지 선택해야만 한다.

잭 매틀록 전 주소련 미국 대사는 3월 15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고문에서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화나게 해 이란 핵 문제나 북한, 시리아 내전 같은 국제적·지역적 사안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러시아를 더욱 고립시키는 것은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썼다.

◆군사제재의 효과=크림 사태 이후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영국·독일은 대러 군사 협력 중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EU의 군사 협력 제재는 약하다. 러시아의 무기 중개업체인 ‘로스오보론엑스포르트’의 수출입 계약 중 유럽 무기 비중이 1%도 안 된다. 영국은 주로 군복 재료를 수출하는데 제재로 약 1억3300만 달러를 손해본다. 독일은 저격 무기 수출, 니제고로드 주 물리노의 군사훈련 디지털센터 건설을 맡는데 금액은 1억 달러다.

가장 큰 군사협력국인 프랑스는 관망 중이다. ‘미스트랄’급 대형 헬리콥터모함 두 척을 인도하는 계약 한 건만 해도 프랑스의 DCNS와 STX에 12억 유로(약 1조7880억원)를 안겨준다. 러시아는 50%를 이미 지급했다. 프랑스는 또 헬리콥터모함 두 척을 추가로 건조해 러시아에 판매할 계획이다. 프랑스는 인도에 장갑차와 전투기 SU-30MKI, MiG-29K를 공급하는 러시아의 대형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프랑스의 군사 제재를 환영한다. 위약금 때문이다. 그 돈으로 러시아는 ‘미스트랄’급 항모를 최소 5대는 건조할 수 있다.

군사제재와 관련해 미국은 조용하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보다 잃을 게 많다. 베르흐냐야살다에 있는 ‘BSMPO-AVISMA’는 미국 Boeing 787 ‘드림라이너’에 들어가는 티타늄 부품의 40%를 공급한다. 울리야놉스크엔 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에 공급되는 물자의 60%가 거쳐 가는 환적 기지가 있다.

드미트리 리톱킨, 알렉산드르 가부예프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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