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전후 재건이 분쟁 불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막대한 규모의 이권이 걸린 이라크 전후복구사업이 새로운 국제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9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1단계 복구사업을 미국 기업들이 독점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반전 진영은 물론 미국의 동맹국까지 불만과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5일 이라크 내 유정에 난 불을 끄고 인프라를 재건하는 사업자로 한때 딕 체니 부통령이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핼리버튼의 계열사인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KBR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유정 진화작업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업자 선정에 체니 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앞서 24일에는 미.영 연합군이 점령한 이라크 남부 움 카스르 항구의 복구 및 전후 운영을 책임질 사업자에 역시 미국 업체인 아메리카 하역 서비스(SSA)가 확정됐다.

앤드루 나치오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은 25일 이와 관련, "이번에 입찰 안내서를 대부분 미국 회사에만 발송한 것은 전시 보안상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나치오스 처장은 "그러나 향후 입찰에는 모든 외국 업체들이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증폭되는 각국의 불만을 무마하려 애썼다. 하지만 입찰에서 제외된 국가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관방장관은 26일 "전후 복구사업은 국제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으며 이는 국제사회를 결합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강력한 후원자인 영국은 자국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해 가장 큰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25일 "유엔이 전후 이라크 문제 처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독일 등 반전 국가들까지 복구 사업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이다. 루이 미셸 벨기에 외무장관도 25일 "일부 국가에 의해 독점적으로 이뤄지는 재건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유엔이 이라크 재건의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와 러시아도 미국 주도의 독단적인 이라크 재건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유철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