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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저|황성모(한국사회학회 회장) 이상희(서울대 교수·신문학)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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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황=여가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레저」는 넓은 의미에서 외적강제가 없는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 즉 노는 시간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교양을 넓히고 전체 문화를 향상시키는 생산성과 재창조성 (re-creation)에 있습니다.
이=좁은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이 생활하는 시간의 총량중 수면·식사·배설 등 생리적인 요구에 따라 소비하는 시간과 노동시간을 제외한 개인이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을 지칭합니다. 노동시간에 대한 대응개념으로 사용된 말이지요.
「레저」를 형태적인 면에서 보면 자기가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인 「레저」와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레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등산· 낚시· 스포츠· 관광 등이 능동적인 것이고 TV· 「라디오」· 「스포츠」구경 등은 수동적인「레저」의 범주에 듭니다.
황=「레저」는 처음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이 형성되면서 등장했습니다. 피지배계층이 근면을 강요당할 때 지배계급은 여가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지배계급의 여가는 문화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그리스 문화 등 고대문화는 노예계급의 생산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점에서 문화는 여가활동의 소산이었다고 볼 수 있죠.
지배계급 등 특수층의 전유물로만 한정되어있던 「레저」가 대중화된 것은 자본주의의 구조변화와 함께 대중사회가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이=생산수단의 급격한 변화 등 산업의 발전은 중간층이라 불리는 봉급생활자를 증가시켰고 이들이 갖게되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함께 「레저」의 대중화를 촉진했습니다. 한국에서 대량적인 「레저」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의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레저」의 필요조건은 「돈」과 「시간」인데 「레저」가 대중화되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를 『그림의 떡』으로만 봐야하는 층이 아직도 많습니다.
황=사회생활 속에서 「레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레저」는 차차 자본재생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소위 「레저」산업의 등장이지요. 오늘날은 이 「레저」산업이 대중의 취향으로 규정하게까지 되었습니다. 이는 「레저」욕망을 개발하고 그것을 대중화시키는 역할도 했지만 「레저」를 획일화시키고 본래 그것을 통해 얻어질 것으로 믿었던 교양과 문화를 향상시키는 창조성을 약화시키는 일면이 있습니다.
산업이 제공하는 「레저」는 대중이 일방적으로 수용하게되는 상품인데 그 내용이 생산적이고 가치창조적이 되지 못한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본래 「레저」는 「일」이외의 독서나 취미활동 등을 광범하게 의미한 것인데 요즘은 낭비와 향락을 위한 것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등 서구에선 「레저」를 「킬링· 타임」(Killing Time) 혹은 「킬링·머니」(Killing Money)라며 우려하는 비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경향이 보이고 있어요. 전시효과적 파급현상을 낳을 상류층의 무분별한 여가행각은 자중되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레저」의 또 하나의 측면은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인 「레저」보다는 소극적인 「레저」에 기울어져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레저」산업의 발달과 연관됩니다만 자신의 정신생활이 타의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요.
황=69년의 여가선용에 대한 한 조사는 일본인은 서구인보다 TV를 보는 시간이 배나 많은 반면 「라디오」를 듣는 시간은 절반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우리나라엔 아직 조사된 자료는 없지만 당시의 일본인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TV가 「라디오」보다 시청자의 사고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레저」활용은 대중의 정신연령과 유관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TV보급율이 몇 가구당 몇 대니 「호텔」이 얼마가 들어섰느니 하는「레저」시설이나 기구의 양적인 팽창이 꼭 「레저」의 질적인 향상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레저」산업이 학생이나 젊은 층에 대해서 만이라도 기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인류의 이상은 보다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이상 속에 차차 넓어져 가는 여가는 낭비와 향락이 아니고 지적인 탐구와 문화의 재창조를 위한 시간으로 선용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레저」의 내용도 사명집단의 교육적 지도에서 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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