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3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미 그 작년부터 부안에서 간척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테면 근년에 들어와서 말썽거리가 되어버린 새만금 간척공사의 할아버지뻘쯤 되는 공사였다. 그때는 온 국민이 봄마다 보릿고개를 겪고 식량이 모자라던 형편이라 하구를 막아 갯벌을 기름진 옥토로 만든다던 소리는 그럴 듯했다. 대위와 나는 김제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동진강과 계화도 간척 공사장 사무실이 있다는 돈지 읍내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과연 공사는 활기차게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공사장의 함바를 찾아가서 십장을 통하여 방을 배정받았고 돌 나르고 흙 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이때의 경험들은 나중에 제대하고 나서 중편소설 '객지'에 그대로 썼다. 물론 노동자들의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쟁의와 농성은 없었지만 그 비슷한 일은 일어났다. 지방 공사장에서는 용역에 의하여 조직 깡패 비슷한 녀석들을 고용해서 노무자들을 관리하기 마련이었는데 이들과 일반 노동자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형편은 나중에 보니 광산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공사판이 커서 그런지 함바의 규모나 식사도 신탄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나은 편이었다. 그대신 일은 매우 고되고 힘들었다. 거의가 십장 중심으로 짜여진 도급 일이어서 각 조마다 경쟁적으로 할당 작업량을 채우려고 아침에 해 보고 시작해서 저녁에 별 보며 끝마치는 하루를 보냈다.

빈 드럼통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나갔으니 일하러 나오라는 작업 개시의 종소리였다. 누군가 투덜댔다.

빠졌나 본데, 제기랄.

각 함바로부터 공터로 내려가는 인부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바다는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으나 곳곳에 밝혀진 횃불 빛에 드러난 개펄의 일부분이 보였다. 궤도차가 시동을 걸고 있는 소리가 끊어질 듯하다가는 이어지고 있었다.

소금내 섞인 바람이 마주쳐 불어왔고 돌 제방을 때리는 물보라가 화차 위에 떨어져 내렸다. 만의 반대쪽에서도 똑같은 모양의 석축이 쌓여 있어서 나중에는 이쪽 편과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제방은 서로 마주 향한 해안의 돌출부로부터 출발되어 바다를 차단할 셈이지만 아직은 가운데가 크게 무너져나간 담과 같았다.

날일조는 주로 제방의 누수 방지를 위하여 제방의 뒷면에 흙을 쌓는 일과 해변에서부터 차츰 수면 매립을 해가는 일들을 했다. 밤일조는 썰물 때에 급한 경사의 돌쌓기를 했고 제방을 자갈이나 잔돌로써 굳히는 일, 그리고 수로작업조는 담수를 끌기 위해 강안을 파고 관개를 시킬 수로와 수문을 내는 일이었다. 그밖에도 채석장 일이라든가, 바닷속에 기초공사를 하는 뱃일이라든가, 제방 위에 시멘트를 입히고 물결받이와 동마루 비탈을 세우는 미장이조들이 있었다. 물때 작업은 먼저 한 조의 반수가 화차에 돌을 실어 보내면 제방의 끝에 있던 다른 반수가 돌들을 아래로 굴려내리는 일이 계속되다가 높이가 일정해지면 급한 경사로 차곡차곡 돌을 쌓아 올렸다. 밀물 무렵부터 조가 교대되어 자갈을 실어다가 이제까지 쌓은 부분을 다지면 하룻밤 일은 모두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림=민정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