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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CEO 마감 유종열 한국바스프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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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 유회장의 집무실 벽에는 '부앙무괴(俯仰無愧)'란 글귀가 걸려있다.'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 보아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산다'라는 뜻인 이 글귀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월하(月下)스님께 받은 인생좌우명이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부끄럽지 않게 배짱대로 하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니 오히려 일이 잘 풀렸다"고 회상했다. ■

28일 한국바스프의 대표이사 회장직을 물러나 20여년에 걸친 최고경영자(CEO)생활을 마감하는 유종열 회장(64)의 표정에는 미련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평생 입바른 소리를 하고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도 60세를 넘어서까지 최고경영자로 용케 살아남았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밖에요.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그는 "내가 걸어온 인생역정을 미리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주어진 인생은 열과 성을 다해 살아왔다"고 했다.

유회장이 탁월한 전문경영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부도난 기아.아시아 자동차의 법정관리인 겸 회장으로 선임됐을 때부터다.

1998년 9월 무렵의 일이다.

"그만둘테니 당신들이 그렇게 잘 알면 직접 하시오." 당시 국제입찰을 주도하던 유종열회장은 정부와 채권단 대표인 산업은행이 2차 입찰을 앞두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자 이렇게 맞받아 쳤다.

그는 또 입찰에 앞서 노조가 제3자 인수 저지를 내걸고 파업을 불사하며 회사에 6백여억원의 손실을 입히자 "원칙에서 어긋나는 일은 파업이 아니라 그 어떤 위협을 가해도 결코 받아 줄 수 없다"고 꿋꿋하게 버텨냈다.

유회장은 오히려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해 서슬퍼런 노조를 상대로 임금 및 퇴직금 가압류 신청을 했다. 파업은 이내 수그러 들었다.

결국 그는 국내외의 갖가지 외압을 소신으로 막아내며 3차례에 걸친 국제입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유회장은 이처럼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자칭 '통뼈 스타일'이다.

유회장의 집무실 벽에는 '부앙무괴(俯仰無愧)'란 글귀가 걸려있다.'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 보아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산다'라는 뜻인 이 글귀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월하(月下)스님께 받은 인생좌우명이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부끄럽지 않게 배짱대로 하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니 오히려 일이 잘 풀렸다"고 회상했다.

유회장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군인.교수.관리를 거쳐 업종이 다른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잇따라 맡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그는 1957년 경기고를 졸업한 후 육사 17기로 군에 입문했다. 김동진.이병태 전 국방장관과 김진영 전 육참총장, 허삼수 전의원과 허화평 민국당 최고위원이 동기생이다.

그는 미국 유학 후 야전지휘관이 되려던 꿈을 포기하고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퍼듀대학을 거쳐 일리노이대학에서 기계공학박사를 획득한 후 육사 병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5공 출범과 더불어 청와대 경제비서관(80년)으로 관계와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위기해결사'로서 유회장의 진면목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잡음이 끊이지 않아 존폐의 기로에 섰던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직(82~88년)을 맡으며 경영정상화를 일궈내면서 부터다.

이후 유회장은 고교와 대학원 선배인 조석래 효성회장에게 발탁돼 효성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88~98년)으로 활약한다. 이때에도 경영원칙에 어긋난다 싶으면 오너인 조회장에게도 서슴없이 따지고 드는 강단을 보여 주위사람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특히 이 시기에 독일 바스프사와의 합작사업에서 출중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훗날 바스프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유회장은 업무 파악과 조직 장악력이 남달리 빠른 경영자로 정평이 나있다. 기아차 기획총괄사장으로 유회장을 곁에서 보좌했던 이종대 대우자동차 회장은 이렇게 기억한다.

"유회장의 장점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업무와 사태를 꿰뚫는다는 것입니다. 부하직원을 신뢰하면 엄청난 재량권을 줍니다. 그래서 아랫사람이 전력을 다해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요. 그는 복잡하고 부당한 일일수록 대원칙을 세우고 원칙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에는 정면승부를 날리지요".

유회장은 굽힐 줄 모르는 소신 탓에 주변인사로 부터 때론 '비협조적인 고집불통'이란 소릴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인연을 소중히 하고 남을 배려하는 인간관계의 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요즘도 정기적으로 과거 부하직원들에게 직접 안부를 챙기고 부부동반으로 식사에 초대할 정도로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

측근인사들은 유회장이 엄격한 표정의 겉모습과는 달리 직원들과 폭탄주를 돌리며 격의 없는 농담을 건네는 소탈한 경영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 회장은 기업 경영에서 상사와 부하직원간에 신뢰를 가장 중요시 한다. 업무를 추진하는데 상하가 서로 믿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수 없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먼저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을 신뢰하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국인들은 열과 성을 다해 신바람나게 일을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유회장의 이런 강력한 리더십은 5개의 서로 다른 기업이 합쳐진 한국바스프에서 빛을 발해왔다.

1사 4노조의 복잡한 구도를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출범 이후 4년 연속 노사 평화를 이뤘으며 전 세계 바스프그룹 내에서 3년 연속 최고 제안 실적을 올린 선도적인 사업장으로 자리잡았다.

바스프사의 고문직 제의를 사양한 유회장은 은퇴 후 거취에 대해 "당분간 쉬고 싶다"면서 "전국의 명산고찰과 불교유적지를 찾아 다니며 불교 공부를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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