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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몸' 최태웅의 마지막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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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각종 부상을 안고 있는 현대캐피탈 최태웅이 팀 우승을 위해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최태웅이 지난 9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LIG 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탈해 하고 있다. [뉴시스]

그의 몸 절반은 온전치 못하다. 림프암 후유증으로 왼팔 감각이 무디고, 왼쪽 발목 부상으로 걷기조차 힘들다. 왼쪽 팔과 다리가 성치 않은 그가 배구코트에서 뛰는 건 기적이다. 현대캐피탈 세터 최태웅(38) 얘기다.

 안남수 현대캐피탈 단장은 “몸 상태로 보면 최태웅은 일상생활도 어렵지만 진통제를 맞아가며 뛴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많은 훈련을 한다. 훈련을 하면서 고통을 잊는 것 같다. 정말 독한 선수”라고 말했다.

 최태웅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훈련한다고 통증이 줄어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 왼쪽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좌우 균형을 맞춰야 한다. 꼭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단 의료팀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며 말려도 최태웅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훈련한다. 훈련으로 고통을 잊는 것으로 오해하기 충분하다.

 그는 2005~2006시즌부터 4년 연속 세트 1위를 기록했고, 2008~2009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며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지난 시즌 V리그 1만 세트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번 시즌엔 주전 세터 권영민(34)의 뒤를 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몸이 성치 않고 나이가 많아 경기 후반에 잠깐씩 투입된다.

 그렇다고 ‘반쪽 선수’는 아니다. 안 단장은 “최태웅은 야구로 치면 ‘마무리 투수’다. 승부처에서 흐름을 돌려놓는 능력은 여전히 탁월하다”고 치켜세웠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은 “최태웅이 잘해주면 우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9년 삼성화재에 입단한 최태웅은 한국 최고의 세터로 활약했다. 2009~2010시즌을 마친 뒤 자유계약선수(FA) 박철우(29)가 현대캐피탈에서 삼성화재로 이적하면서 현대캐피탈은 최태웅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다.

 승승장구했던 최태웅에게 시련이 계속 찾아왔다. 2010년 왼팔이 아파 조직검사를 했는데 림프암 판정을 받았다. 구단에만 투병 사실을 알리고 그해 10월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격렬한 운동을 계속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종교도 없으면서 하느님, 부처님을 찾아 “제발 코트에만 다시 서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완치판정을 받은 뒤에야 2011년 2월 아내 조재영(36)씨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최근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팔 치료를 받는다.

 더 심각한 건 고질적인 발목 통증이다. 뼈가 계속 웃자라 근육을 건드리고 있다. 물리치료를 받아 조금 나아진다 싶어도 몇 시간 훈련하면 통증이 다시 찾아온다. 진통제 없이는 걷기도 힘들다.

 최태웅은 림프암을 이겨냈고, 발목 통증도 참아내고 있다. 마지막 적수는 6시즌 연속 우승팀 삼성화재다. 현대캐피탈 이적 후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28일부터 5전3승제)에서 친정팀을 만나는 그는 “레오와 박철우로 이어지는 삼성화재의 공격력은 분명 뛰어나다. 그러나 그들이 매 경기 잘할 순 없다”며 “우리 팀 아가메즈-문성민 콤비의 화력도 강하다. 게다가 우린 강한 서브와 안정된 리시브도 있다. 무엇보다 팀워크에서 앞선다”고 자신했다. 최태웅은 “후배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즌에 앞서 “내 발목이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솔선수범하겠다. 너희도 따라와 달라”고 당부했다.

 여자부에선 IBK기업은행과 GS칼텍스가 27일 챔피언전을 치른다. 디펜딩챔피언 기업은행은 정규시즌에서 GS칼텍스에 5승1패를 기록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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