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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적인 것」의 순환적 이해-문학에 있어서의 한 방법-송상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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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용운이 「한국적」일수 없었던 것은 그가 「님」을 「기다리는 님」으로 파악한 데 있다. 그리고 그의 진정한 의의는 그가 「님」을 「한국적」인 모습을 훼손함 없이 「원망스러움」에서 자유롭게 한 문화사적 비중에 있을 것이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님」을 규정하는 「소유」의 테두리를 헐어뜨림으로써 가능했다. 이것은 한용운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이루는「원망스러움의 극복」과 「님의 중첩성」을 푸는 열쇠가 되어준다. 김현이 「여성주의의 승리」에서 한용운을 『이조이래 불행의 「제스처」의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지적한 것은 결과적으로 올바른 성찰이었다 할지라도 두 가지 점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남기고 있다. 그는 탄식의 극복이라는 일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한국적인 「님」의 속성인 이별의 아픔을 소홀히 했다는 점과 탄식의 극복이 『한국 사회의 구조를 가장 명료하게 파악한』역사의식을 가짐으로써 가능했다는 판단이 그것이다.(이러한 판단은 「혁명가의 우렁찬 목소리」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님」은 아가의 환희나, 「타고르」처럼 경이에 찬 연가를 부르는 대상이 아니다. 원망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한용운에게도 「님」은 「뗘나간 님」이었다. 슬픔에 대한 표현은 직접적이고 격렬하기까지 하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하는 직접적인 탄식으로 나타나는 이별의 슬픔은 「님은 갔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상기시키면서 거의 절망적인 감정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실로 「님의 침묵」은 눈물로 얼룩진 시집이다.
그러면서도 한용운이 「원망스러움」에서 그의 시를 건져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불교적 수사법(또는 사상)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한용운의 서술은 불교적 반어(Irony)와 윤회적 언어에 의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님의 심열…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알수 없어요…『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이별… 『진정한 사람은 애인의 포옹만 사랑할 뿐 아니라 애인의 이별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이 아니더면… 『나는 곧 당신이어요』
사랑의 존재…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
참아 주셔요…『그리하여 당신은 나를 나를 사랑하지 말고 나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할 수가 없도록 하여 주셔요』
선사의 설법…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반비례…『당신의 그림자는 광명입니다.』
최초의 님…『그러므로 만나지 않는 것도 님이 아니오 이별이 없는 것도 님이 아닙니다.』
한용운의 이와 같은 어법은 「색」과 「공」의 대립을 넘어섬으로써 지극히 감동적인 역설을 담고 있는「반야심경」에서 읽을 수 있는 불교의 대표적인 수사법(사상)으로서 이별이 만남의 근거가 되는, 슬픔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님」의 중첩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여래자 무소종내 역무소거 고명여래』(금강경).
여래에 대한 진술은 불교적 수사법의 극치를 이루는 것으로 『왕래라 하나 가고 옴이 없으며 불래라 하나 오지 아니함이 없다』는 것은『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짓는다』는 수소위주(입장이 없는 입장)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연연한 님」과 「조국」과 「불타」의 동시성은 한용운의 불교적 어법과 관련된 입장이 없는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해료가 불가능하다.
그의 시는 애틋한 고백의 연애시로서 감동적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종교적인 것, 애국적인 것과 밀착되어 있다.
정철이 임금을 「이성적인 님」에 얹어 노래했을 경우 임금과 「님」은 단순한 본의와 수단의 관계에 놓여 있다. 「원망스러움」의 개재를 철거하고 나면 「님=임금」이라는 가장 미숙한 「메커니즘」이 곧 나타나고 만다. 그러나 한용운에게 있어서 중첩은 마치 3개의 투명유리를 포개어 놓은 것처럼 우리의 시선을 통과시킨다.
가장 빈번하게 「님」의 교우를 보여 주는 「알 수 없어요」에서도 「님」은 위화감이 끼어 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처리되어 있다.
「입장이 없는 입장」에 설 수 있었던 한용운에게는 「기다림」은 차라리「님」의 근거였을 것이다. 「기다림」은 「님」이 떠난 자리에 피는「원망스러움」이 아니라「님」에 앞서「비로소 있었던」양원 적인 생성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님」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기다림의 지향」이었다.
대상이 있기 이전에 「기다림」은 있었음으로 하여 이별은 「님」의 근원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님」을 육화(Incarnation)된 「기다림」으로 이해했을 때, 「님」의 모습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가 있다. 『기룬 것은 다 님』이기 때문이다.
한용운은 「님」을 「기다림」속에서 파악함으로써 「한국적인」정서를 체득하고 거기에서 불교적 체험을 가지고 「제네시스」를 성취한 최초의 한국 시인이 될 수 있었다.

<6, 결론>
「한국적인 것」에의 탐구가 「한국적인 것」의 확장,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것은 한용운에게서 얻은 교훈이었다. 이로써「전통과 창조」라는 또 하나의 서설 적인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데 우리는 전통이 창조에 주는 의의와 창조가 전통에 주는 의의를 동시에 떠올려야 할 것이다.
개인적 내생이 거듭되면서 공동적 의식이 형성되고 공동의식은 다시 개인적인 것에 작용하는 가역반응을 일으킨다.
때문에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전통)이 없다는 엄살로써 우리의 장래에 대한 우선적인 책임을 기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그 사건이 절실히 요청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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