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황의 「터널」벗어나는 76년 세계경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세계경제는 불황과 「인플레」에서 벗어나 완만한 회복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76년의 세계경제는 어떤 궤적을 그릴 것인가? 다음은 동경공업대학 「야지마·균지」교수의 76년 세계경제 전망을 본사 김경철 동경특파원을 통해 기고 받아 옮긴 것이다. <편집자주>

<인플레·디플레 병존>
75년의 세계경제는 석유「쇼크」이래의 세계적 동시불황으로 인해 국내·국제적으로 「인플레」와 「디플레」가 병존. 75년의 무역동향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세계경제는 축소 균형의 방향으로 항로를 잡은 한해였다.
이 소망스럽지 않은 75년의 세계경제 움직임은 76년으로 「바통·터치」됐다. 그런 뜻에서 76년의 세계경제도 상당히 핍박한 상황을 출발 당초부터 상정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다만 75년 중 세계경제의 동시적 불황에 따라 각국, 특히 선진국은 『「인플레」보다는 불황 대책에』라는 인식을 갖기에 이르러 미국, 조금 늦게 서독·「프랑스」·일본 등도 뒤늦게나마 경기 회복책에 착수했다.
75년 9월 IMF총회 벽두에 IMF 전무이사 연설에서도 지적한 바 있거니와 미국·서독 및 일본이 경기회복의 돌파구를 열지 않으면 세계의 동시적 불황에 따른 축소의 악순환은 단절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들 제국이 경기회복 정책에 착수, 벌써 미국 등에서 경기 호전의 지표가 나오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신 경제 「룰」모색>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5∼7년간 계속된 세계경제 혼란으로부터의 탈각기를 빼면 자유주의경제는 IMF·GATT 체제에 의해 운영되어 왔다. 그것이 71년 「닉슨」의 이른바 「신 경제정책」(New Economy Policy)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즉 금·「달러」본위체제 파기선언으로 IMF의 지주가 무너지고 수입 과징금 10%를 부과함에 따라 GATT 정신이 부정됐다.
그 이후 자유세계는 IMF·GATT를 대신하는 새로운 경제 「룰」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71년 12월 「스미소니언」합의에 의한 강세통화의 절상, 73년 변동환율제에의 이행 등은 「닉슨」신 경제정책 이후 IMF·GATT 체제에 대체할 「룰」을 찾는 파경에서 나온 진통의 산물이었다. 이같은 새로운「룰」을 만드는 도중에 석유 「쇼크」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에 세계경제, 특히 자유주의경제 진영은 크나큰 경제적 혼란을 야기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IMF·GATT 체제라는 것이 44년에 탄생했던 단계에서는, 어디까지나 전후의 경제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조치였다. 즉 당시 경제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섰던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든 자유주의경제의 유지와 발전을 도모해 가자는 잠정적 처방이었다.
그렇지만 의외에도 이 IMF·GATT의 「룰」이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잘 들어맞아서 IMF·GATT 체제로 자유주의의 운영이 충분하다는 자신을 얻게 되고 따라서 잠정적인 것이 항구성 있는 것으로 생각된 데에 큰 문제가 있었다.
사실 65년 1월 「프랑스」「드골」에 의한 「금본위 복귀 선언」, 68년 미국의 공적·민간 「베이스」채무 4백억 「달러」에 대해 미국 보유금이 1백억「달러」선을 하회했던 일들이 표면화하여 IMF·GATT 체제에 대한 항구적인 신뢰는 이미 65년께부터 붕괴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얘기했었다.
이렇게 보면 IMF·GATT 체제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는 약 4반세기만에 이윽고 종말을 고하게 됐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자원 부족·가격 상승>
석유 「쇼크」이전의 몇 년간 세계경제는 동시적 확대 정책을 취했었다.
즉 경기를 자극하고 완전고용 정책을 실시, 그 때문에 세계는 전반적으로 「인플레」경향에 있었고 생산재·소비재의 수급이 불균형을 이루어 재화부족 현상을 나타냄으로써 물재 가격은 급등했다.
그 위에 72년 세계적 흉작에 의한 식량 가격의 등귀가 가중되어 세계적인 「인플레」기반이 형성되고 만 것이다.
거기에 석유 「쇼크」가 일어나 세계, 특히 산유국을 빼놓고는 약 4배로 늘어난 석유대금을 불가피하게 지불하게 됨으로써 국제수지 악화·석유가 급등으로 인한 국내 물가상승, 이들 요인을 억제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불황적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지금까지의 세계경제의 동시적 확대와는 반대로 세계경제의 동시적 불황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 석유「쇼크」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각국은 74, 75 2년간 큰 노력을 했다. 그 결과 한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려되던 세계경제도 75년 말부터는 점차 다시 밝아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석유, 공급 과잉 상태>
산유국에 몰렸던 이른바 「아랍·달러」의 환류도 비교적 순조롭고 세계불황 및 세계 소비국의 석유 절약도 주효하여 현재 석유는 공급 과잉 상태에 있으며 조업 단축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75년 9월 「빈」에서 열린·OPEC 총회에서도 세계 「인플레」에 원유 가격을 「슬라이드」시켜 원유가를 30% 이상 올리려고 한 「이란」과 「이라크」등 강경파의 의견이 억제되고 비교적 온건파인 「사우디아라비아」「아랍」토후국 등의 안에 가까운 인상폭이 결정됐다.
특히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하나는 표준 원유로 일컬어지는 「사우디」의 「마커」원유 10% 가격 인상과 「마커」원유에 비해 저 유황분의 「이란」「이라크」「쿠웨이트」「인도네시아」등의 원유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을 75년 9월 「빈」회담에서 시정한 것. 그 결과 평균적으로는 7% 정도의 원유가격 상승에 그쳤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석유전쟁 직후와 같은 경제「메커니즘」을 전혀 무시한 이른바 「정치적 가격」이 아니고 석유가가 점차 경제「메커니즘」, 즉 수요와 공급관계에 의해 움직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석유가는 앞으로 전쟁 같은 돌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비교적 경제「메커니즘」의 움직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석유의 정치적 가격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동·석·천연고무·「보크사이트」등 이른바 1차산품 가격은 한때 원유나 식량 가격의 앙등 및 세계경제의 동시적 확대로 인한 수요 증대에 이끌려 높은 가격을 보였으나 현재는 세계의 동시적 불황 때문에 수요가 극도로 저하되어 많은 제1차산품의 고가격 시대는 반감 내지는 그 이하라는 상태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1차 산품 제국의 소득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선진공업국들에서 제기되고 있다.
식량은 계속해서 75년 소련의 대량 매입으로 고가격을 불러왔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지역, 특히 미국이 풍작이어서 72년 같은 급등은 볼 수 없었다. 어떻든 세계경제가 석유「소크」의 충격을 서서히 극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점차 침착과 자신을 되찾고 있다.

<「수의 폭력」이 횡행>
76년뿐만 아니라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채용하고 있는 선진국-그 대표가 미국이지만-이들 국가가 「유엔 이탈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ILO(국제노동기구)로부터의 미국 탈퇴, 「랑부이에」선진국 수뇌회의 등은 이 모두가 「유엔」이탈 현상으로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현재 「유엔」가입국은 1백50여개 국에 이르고 있다. 그들 가입국 중에서 엄격하게 생각한다면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불과 22개국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의회민주주의의 이념, 즉 자유주의경제의 이념을 발전시켜 바탕을 다져가는 것은 오늘의 「유엔」광장에서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총회의 결의방식은 어떠한 대국이나 소국을 막론하고 1국 1표 주의이며 다수결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게 돼서 의회민주주의의 이념은 수의 폭력에 의해 부정되는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유엔」에서는 공정한 논리가 채택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 좋은 예가 한국이 제출한 안과 그것과 정반대 되는 북한의 안이 동시에 채택된다는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이다.
즉 오늘날 「유엔」이라는 곳에서는 의회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공정한 논리라는 것이 유감스럽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 의회제 민주주의국의 PR장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에 내세우기는 「유엔」을 존중하지만 속으로는 의회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공정한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서 「유엔」이탈 현상은 필연적인 움직임이며 미국·서독을 중심으로 해서 이 움직임은 76년 중 한층 더 현저하게 나타날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권력 구조의 변질을 볼 수 있다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즉 복잡하게 얽힌 세계의 정치·경제 「네트워크」의 결절점에 있는 국가라면, 예컨대 소국이라도 대국을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중동의 움직임이며 또 아무런 산물도 없는 「뱅글라데쉬」라도 정권이 바뀌면 인도·소련 편향에서 중공·미국 편향이 되어 미·중·소·인이라는 대국을 움직인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남북 문제가 첨예화한 것도 북의 힘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남의 힘이 증대해 온 결과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소국의 권력이라고 할까, 발언력의 증대도 실은 50년대, 60년대에 「유엔」이라는 곳을 통해서 육성되어 온 것으로 그것이 반드시 의회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자유경제의 단결과 발전에 연결되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 역행 현상이라는 것을 76년을 맞으면서 충분히 주의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76년의 세계경제는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암흑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1년이라고 하고 싶다.
즉 세계의 동시적 불황에서 우선 미국·서독·「프랑스」가 탈출하고 뒤이어 일본 경제도 다소 빛을 되찾을 1년이 될 것이다. 이들 국가가 경제적으로 빛을 되찾게 되면 사회주의국은 차치하고 오랜만에 자유주의경제 제국에도 전도에 기대감을 갖게 하며 그것이 자유주의경제에 대한 자신을 회복하는 대로 연결될 것이다.

<구조적 변화의 기로>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와 같은 V자형 경기 회복은 바랄 수가 없다. 현재 세계경제는 확실히 구조적 변화라고 하는 갈림길에 와 있다. 석유 「쇼크」의 아픔은 너무도 컸다. 아직도 「인플레」와 「디플레」의 동거, 즉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지나치게 급격한 경기 회복책을 쓰면 모처럼 진정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물가 문제에 불을 붙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고용(즉 실업) 문제에 주안점을 둔 경기 회복책이 물가 문제를 노려보면서 신중히 저속경제에서 안정경제로 궤도 수정하는 해가 될 것이다. 선진공업국이 경기 회복책을 먼저 채택하지 않으면 기타 국가의 경기 회복은 불가능하다. 그보다도 일본과 같이 자국의 물가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과도한 불황-잔혹 불황-현상으로 함입되어 있으면 근린제국 경제 성장의 다리를 잡아끌게 된다.
일본은 물가를 염려해서 불황 대책이 너무도 뒤늦게 따라다녔고 거기다가 대담한 불황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제1차에서 제4차 불황 대책까지 나와도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불황에서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서는 재할 금리의 대폭 인하, 예금 금리 인하, 개인·법인에 대한 감세, 대폭적인 적자국채 발행 등을 포함한 대담한 제5차 불황 대책을 실시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76년 하반기의 경기 회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종래의 불황과는 달리 최종수요 항목인 개인소비(국민 총지출×53%), 개인주택 투자 및 수출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하락해 버렸다. 그래서 개인소비를 자극하기 위한 정책이나 수출촉진 대책 등이 현재로선 특히 요망된다.
세계의 석유·식량 및 원자재 등의 세계적 가격은 지난 한때와 같은 혼란이 아니고, 경제적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상태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므로 선진 제국은 세계의 동시적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담한 경기 회복책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되면 75년은 석유 「쇼크」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밝은 첫해가 될 것이다.

<고뇌의 빛 띤 공산권>
사회주의제국의 경제는 최근 몇 년간 악화일로에 있다. 그것은 소련이나 중공 경제의 최근 몇 년간 동향을 분석하면 전문가가 아니라도 곧 이해할 수 있다.
석유 위기이래 자유주의경제 체제의 위기를 떠들었으나 자유주의경제 제국은 어려운 시련을 견디어 내고 어떻든 76년에는 괴로운 과정으로부터 탈출해 갈 것이라고 전망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경제권은 점점 경제적 고뇌의 빛을 짙게 띠고 있다.
그런 뜻에서 자유주의 경제체제 위기론은 일시적인 환상이다.
자유주의 경제 원칙인 가격 「메커니즘」은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인류의 지혜로부터 나온 가장 훌륭한 발견중의 하나다.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주의 경제체제 위기론의 환상에 현혹됨이 없이 좀더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자신을 가질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76년은 자유주의 복권의 해로서 세계 경제적으로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그와 함께 현재의 세계에는 비교생산비 원칙에 바탕을 둔 국제분업 논리가 정착화하고 있다. 이 기반 위에서 자유경제 경쟁의 「메커니즘」이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부터 자원 보유의 영구주권론이 나와서 이번의 석유 「쇼크」를 계기로 「자원보유 원칙」이 「자유경쟁 원칙」과 병존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는 타국에서 자원을 수입해서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붙임으로써 자국 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일본·자유중국 등은 「부가가치 생산원칙」을 적어도 자유주의 경제권 안에서는 인정받는 운동을 76년 중에 전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도시하면 별표와 같이 된다.

<투자 위해 이윤 축적>
끝으로 76년의 세계경제를 밝게 이끌기 위해서는 선진국·산유국·개발도상국이 협조와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상호 호혜 정신에 다시 돌아가 서는 것이 대전제가 된다. 이제는 한 나라만이 번영한다는 시대는 지났다. 이 상호간 정신적 「파이프」가 굵어지면 세계경제, 특히 자유주의 경제제국은 실질성장률도 「플러스」로 전환되고 무역도 축소에서 확대의 방향을 걸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처럼 중화학공업화 노선을 가고있는 국가에서는 산업을 진흥시키고 산업의 이윤을 「풀」로 해서 다음 확대 재생산의 자금으로 활용, 상업 자본적 성격에서 점차 탈피하여 산업구조는 물론 자본도 산업 자본적 기능을 갖도록 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에서 번 것을 쓸데없이 분배해 버리지 않고 다음의 투자를 위해 축적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M·베버」가 지난날 상업자본사회에서 산업자본사회로의 이행을 논할 때 역설했던 논지다.
세계경제 회복의 초년도인 76년은 동시에 한국이 명실공히 산업 자본적 자유주의 국가로 비약하는 해이기도 한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