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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약속을 지키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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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또 한해가 시작됐다.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각오와 함께 미래에 대한 설계를 다듬는다. 개중에는 자신의 고질적인 버릇과 생각에 대해 후회하고 이를 고쳐나가야겠다는 각오도 많다. 우리 생활주변의 고질적인 병폐를 골라 이를 반성하고 새로운 자세정립의 기회를 마련해 본다.
6·25 직후 한국군의 사열을 받기로 했던 한 미군장성이 사열 시간을 하오3시59분으로 정해놓고 정확히 59분에 입장, 사열을 받았다.
『4시면 4시지 3시 59분이 뭐냐』고 이상히 생각한 한국군장교가 이유를 묻자 『당신들에게 1분이라도 정확히 지키는 버릇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한다.
우리국민의 약속과 시간관념이 흐리멍덩하다는 것은 해방 후 이 땅에 진주한 미군들에 의해「코리언·타임」이란 유행어로 표현됐다.
「코리언·타임」은 정해진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뜻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이 비합리·비능률적이고 행동이 나태하다는 의미까지 내포, 가장 수치스런 우리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30년-. 이제「코리언·타임」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질 때가 됐음직도 한데 아직도 여전하다.
여럿이 모이는 모임에 5∼10분씩 지각하는 일, 결혼식등 관혼상제 때 의례 10여분씩 늦게 시작하는 일등 시간을 지키지 않는 데서부터 미리 약속도 하지 않은 채 바쁜 사람을 불쑥 찾아가 심심풀이 잡담을 꺼내는 일, 다방에 몇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등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까지 그예는 허다하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지 않고 『바쁜 일이 있어서…』라며 혼자 바쁜 체 할 때 약속을 지킨 사람은 한가한 사람으로 오히려 수치를 느끼게 되는 일도 있다. 선약을 해놓고도 상사나 유리한(?)새로운 약속이 제시되면 아무런 통고 없이 선약을 파기하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남의 선약은 무시하고 자신과의 약속만을 고집하는 몰상식한 현상도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도 해외여행때는 모두 애국자가 되고 약속과 시간을 지키는 문명인이 되지만 귀국하고 나면 또 주위에 젖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시간관념이 철저하다는 미국은「시간은 곧 돈」(Time is money)이라는 사고방식이 체질화하여 분·초까지 나누어 아껴쓰고 약속을 정확히 지킨다.
시간약속을 두번 정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공동생활의 결격자로 낙인찍고 다시는 상대조차 않는 다는 것.
약속은 혼자 지키고 아껴야 소용이 없지만 개개인이 지키고 아낌으로써 새로운 풍토형성이 가능할 것이다.

<신종수기자>(조언=이숭령 한양대문리대학장·안승욱 숭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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