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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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 새 아침.
기지개를 크게 하고 찬란히 밝아 오르는 동녘 하늘을 바라본다. 둥글고 큰 태양이다.
5천만이 모두가 용꿈을 꾸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새 해가 되겠는가.
새 해란 언제나 좋은 것이다. 한해동안 간직하던 꿈이 퇴색해 버리고 의욕이 사그러질 무렵이면 새 해가 다가와서 새 꿈을 안겨 주는 것이다.
사람이란 어리석게도 죽는 날까지 꿈꾸고, 기대 속에 사는 존재이다. 아무리 꿈이 꺾여도 우직스럽게 해가 바뀔 때마다 새 꿈을 믿는다.
이러는 사이에 역사가 바뀌고 사람들이 달라진다. 달라지지 않는 것은 태양뿐이다.
그러나 1976년 새 해는 보기에 따라 밝게도 보이고, 어둡게도 보이는 것이다.
앞으로 25년이면 20세기는 종막을 내린다. 그 때에는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진 지하자원은 거의 모두가 거덜이 난단다. 온 세계에 퍼진 광기와 폭력의 바람은 20세기를 어떤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또 지구는 바다에서, 하늘에서, 땅에서 마냥 오염되고만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뭔가 구제의 길이 트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세계가 수많은 위기를 용케 이겨 나갔던 것처럼 아무 탈없이 21세기를 맞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직스럽게도….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특히 올해는 찬란해야 할 새 해다. 우리 나라 항구들이 근대를 향해 문을 연지 꼭 1백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가.
왕과 양반과 상노가 사라지고, 인구 10만도 못 되던 서울이 약 7백만으로 늘고, 우리 손으로 원자로를 세울 수 있게 된 오늘이다.
그리고서도 지난 1백년 동안에 일어났던 것보다 더 엄청난 변화가 앞으로 10년 사이에 일어날 것이 틀림이 없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끔찍스러운 일이다. 생각만 해도 어지러워진다. 세상이 어지럽게 돌고 있을 때에는 같이 돌아서 안 된다.
아무리 변화가 심하다 해도 변화를 보는 관점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조금도 어지럽지가 않을 것이다.
새 아침이 밝아 온다. 새해라고 마냥 즐거워 할 것도 아니다. 새해에는 또 몇 번이나 사람들이 웃게 되고, 몇 번이나 더 많이 울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고 해도 사람은 괴로움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
뒤를 돌아 볼 것도 아니다. 너무 먼 앞을 내다 볼 것도 아니다. 크게 바랄 것도 아니다. 그저 보보시 도장,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차분히 살아 나가면 되는 것이다.
새해의 종이 울린다. 묵은 것을 몰아 내고 새 것을 반기는 종소리가 마음속에 은은히 퍼져 나간다. 독자 여러분에게 복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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