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값 올린 건 과도한 판촉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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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교과서 발행 출판사들이 올해 11종 교과서 값을 2011년에 비해 평균 2.5배나 올려 받겠다고 나선 가운데 교육부가 교과서 가격조정 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소속 90개 출판사는 이 같은 교육부 방침에 반발해 교과서 발행·공급 중단으로 맞서고 있다. 교육계와 출판계에선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으려면 교과서 공급 체계의 고질적인 병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판업계 내부에서조차 교과서 제작 원가를 높이는 불법 영업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교과서 120종을 발행하는 한국교과서 전갑주 대표는 “출판사들은 그동안 교과서를 팔아 이익을 남긴 게 아니라 그에 딸린 참고서를 판매해 수익을 올려왔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참고서 시장을 EBS 교재가 독점하다 보니 교과서 가격을 올려 이윤을 남기려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가격 갈등의 배경을 설명했다.

35년간 출판업에 종사한 그는 교과서 한 권을 새로 만들 때 ▶저자 선지급 원고료 300만~500만원 ▶편집·디자인비 500만원 ▶심의본 제작비 200만~300만원 ▶인정도서 심사비 300만~400만원 ▶기타 경비 300만원 등 많아야 3000만원이 든다고 했다. 전 대표는 “종이 값과 인쇄가공비 등이 추가로 들지만 1만 권 주문이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적정 가격은 5000원을 넘지 않는다”며 “첫 해 대부분 비용이 회수되고 판매 부수가 많거나 몇 년간 같은 교과서를 팔면 이윤이 많아지는 게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출판사들이 높은 가격을 책정한 것은 판촉을 위한 로비 등 다른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역별로 출판사 대신 교과서를 학교에 판매하는 총판 대리점이 있는데, 이들이 평소 학교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특정 교과서 채택 로비를 한다는 것이다.

총판을 통하지 않고 학교와 직접 거래한다는 전 대표는 “총판이 학교장이나 재단 관계자, 교사에게 자료나 책을 무료로 주거나 학교 행사에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며 “ 이번 기회에 교과서 원가 공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한국사 교과서를 처음 제작한 리베르스쿨 출판사 측도 “과도한 경비가 들어가는 불법 비리 영업이 교과서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두 개 출판사가 교과서 채택 이전에 교사용 지도서나 자료를 교사들에게 무상 배포했고, 수백 만원의 금품·회식비 등을 총판을 통해 학교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김오수 한국원가공학회장은 “교과서 계약을 많이 따내야 총판에도 돌아가는 게 생기니 경쟁이 치열하다”며 “소수 메이저 출판사가 교과서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이런 구조 탓”이라고 말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대형 출판사는 실적이 안좋으면 총판을 교체하겠다는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불법 영업을 감독해야 할 교육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교과서 가격 급등을 초래한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과서 생산과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사단법인 한국검인정교과서의 이사장은 지난 20여 년간 교육부 퇴직 관료들이 맡고 있다. 판촉 로비에 따라 교과서 점유율이 정해지는 구조와 함께 출판사를 대표하는 단체에 교육부 출신이 가는 관행이 교과서 공급 체계를 왜곡하는 장애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김성탁·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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