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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의 요우커 유혹, 동대문 패션 한류 되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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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뒤편으로 ‘롯데피트인’ ‘굿모닝시티’ 등 의류쇼핑몰들이 보인다. DDP 인근에는 의류 도·소매점 3만1000여 개가 밀집해 있다. [최승식 기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개관한 지난 21일 오후 11시 DDP 뒤편에 있는 ‘유어스(U:US)’ 쇼핑몰. 이 건물 안에는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다른 한 손엔 대형 가방을 끌고 다니는 중국 바이어들로 가득했다. 중국 바이어들은 스마트폰에 설치된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색상은 어떤 게 있느냐’ 등의 말을 한국어로 번역해 가며 의류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인 김모(30)씨도 태블릿PC로 주문 상황을 확인하며 옷가게들을 누볐다. 김씨는 광저우에 있는 의류 쇼핑몰의 주문을 대신 받아 처리해 주는 이른바 ‘삼촌’이다. 매일 1억원씩, 1년에 300억원이 넘는 옷을 동대문에서 떼어다 중국으로 보내고 있다. 김씨는 “중국에서 한국 의류의 인기가 높다”며 “그때그때의 유행을 빨리 반영해 주는 게 동대문 의류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DDP 앞에 위치한 다른 쇼핑몰 굿모닝시티. 소매를 위주로 하는 이 쇼핑몰은 곳곳이 휑하게 비어 있었다. 간혹 손님이 들어왔지만 물건을 사는 손님은 드물었다. 한 상인은 “라모도 등 부도난 상가들이 몰려 있는 이곳을 ‘마의 삼각지대’로 부른다”며 “그나마 건너편에 있는 곳은 롯데가 인수해 장사가 조금씩 되고 있는 편이지만 이곳은 ‘죽을 맛’이다”고 했다.

 국내 최대 의류상권인 동대문시장이 DDP 개관을 맞이해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DDP 주변 58만5700㎡에 자리 잡은 동대문시장은 의류 매장 수가 3만1000여 개에 달하는 공룡 상권이다. 국내 최대의 도매시장이자 소매시장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 자라·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 브랜드가 상륙하고 중국·동남아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동대문 재도약의 핵심 키워드는 ‘요우커’다. DDP를 중심으로 ‘패션 한류’를 조성해 동대문 패션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고 요우커 바이어들을 모으는 게 서울시의 계획이다. 요우커들은 이미 동대문의 가장 ‘큰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늘어난 중국인 바이어들은 현재 동대문시장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 에서 의류가게를 운영 중인 린추옌(林楚燕·24)은 “한 달에 두세 번씩 동대문에 와서 2000만~3000만원어치를 사 간다”며 5만 위안(약 870만원)어치의 옷을 주문했다.

 동대문 의류도매상 왕현우(25)씨는 “우리 가게는 하루 손님의 90%가 중국인”이라며 “많이 사 가는 사람은 1000만원 이상 쓰는데 이들이 없으면 동대문도 없다”고 말했다.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 지대식 사무국장은 “예년에 비해 중국인 빅바이어들의 발길이 줄고 있다”며 “중국 제품의 품질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어 상인들 사이에 위기감이 크다”고 말했다. 동대문의 의류디자인을 카피해 중국에서 생산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디자인재단 윤대영 DDP협력본부장은 “지금 동대문시장은 짧은 시간에 옷을 만들어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시스템”이라며 “독자 브랜드 없이 운영되는 이런 방식은 앞으로 중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DDP를 핵으로 동대문시장을 독자 브랜드·디자인을 갖춘 아시아 패션의 중심으로 키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서울패션위크’ 등 각종 디자인 행사를 열 계획이다.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에서 의류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완차오린(萬晁麟·24)은 “DDP에서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 맞춰 서울을 방문했다”며 “한국 디자이너들의 쇼룸에 가서 계약을 하고 싶은데 DDP에 쇼룸이 많이 있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울시는 DDP를 통해 동대문 일대 패션산업 매출이 10조6000억원에서 16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 콘텐트 등을 잘 채우지 못하면 결국 DDP가 겉만 번지르르한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신구대 신용남(패션디자인과) 교수는 “DDP를 통한 패션산업 육성은 큰 계획만 있지 세부 계획이 없다”며 “당장 패션위크만 해도 장소만 바뀐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편 윤대영 DDP협력본부장은 “개관 둘째날인 22일에만 16만8700여 명이 다녀가는 등 개관 후 3일 동안 4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DDP를 찾았 다”고 말했다.

글=안효성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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