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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권하는 담배, 아이들 소꿉놀이와 흡사하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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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안대회 교수의 연구실은 서울 성균관로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의 방 한 칸이다. 퇴계의 서실이 그러했을까 싶게 소박하다. 책 한 권이라도 더 보려는 그의 마음 때문일까. 그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차트 보관대를 자료함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선 정조 시대의 박학한 검서관으로 유명한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함께 초대 검서관을 지낸 서이수(徐理修·1749∼1802)에게 보낸 짧은 편지 전문이다.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며 몇 글자 끼적거려 보낸 것이다. 그가 보낸 물건은 담뱃대와 담배다! 이덕무가 유난히 좋아하지 않은 것들이다. 조선 후기의 가장 대표적 금연론자인 그는 흡연을 금지하는 가법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혐오하는 것을 선물했다. 자기는 싫어해도 친구는 좋아하니까 보냈고, 선물을 받고 좋아할 친구를 생각하면 자기도 즐거워서 그랬다. 청탁이 있어서도 아니고, 답례를 바라서도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런 자잘한 일이 너무 재미가 있다.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어른들의 소꿉놀이라는 것이다.

 이덕무는 마음을 담아 선물을 보내는 재미를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에 견주었다. 아이들은 대합껍질 밥그릇에 모래 밥을 담고 사금파리 돈으로 물건을 사고팔아도 어른들의 어떤 신혼살림보다 재미가 있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서 천진하게 소꿉놀이할 수는 없어도 가끔이나마 그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덕무는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며 유년기 소꿉놀이를 상상했다. 저 짤막한 편지글을 읽기만 해도 악착같고 잇속에 밝은 세상에서 한 줄기 맑고 아름다운 심성의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덕무의 많은 글은 따뜻한 정감이 넘치지만 이 글은 유난히 경쾌하고 정취가 있다. 몇 년 전에 발간한 『고전산문산책』(휴머니스트)에 굳이 이 글을 뽑아 넣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남을 부담스럽게 하지도 않고 매사를 즐겁고 경쾌하게 하려는 태도가 보여서 한결 좋다. 아이들이 소꿉놀이하듯이 내가 할 일을 재미있게 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만 같다.

 이 글을 잊지 않고 마음에 두고 있다가 뒤에 그 비슷한 글을 발견하게 됐다. 이덕무보다 두 세대 뒤의 화가인 조희룡(趙熙龍·1789∼1866)이 쓴 글에 저 글과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조희룡은 자신이 그린 그림에 쓴 화제(畵題)를 모아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이란 책을 엮고 그 발문에서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이러한 산만하고 무료한 말을 이 작은 제목을 빌려 발표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실어 놓았으니, 어린애들이 티끌로 밥을 삼고, 흙으로 국을 삼고, 나무로 고기를 삼아 소꿉놀이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이것이 그저 유희에 불과할 뿐 먹지 못하는 것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밥이나 국이나 고기로 보는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조희룡은 그림도 화려하지만 화제도 어떤 화가보다 운치가 넘친다.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화제를 쓴 뒤 뒷날 그것을 모아 책을 엮는 일은 화가에게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그 뜻깊은 일을 조희룡은 아이들 소꿉놀이에 비유하고 싶어 했다. 티끌 밥에 흙 국을 끓여 나무 고기 반찬을 차려서 소꿉놀이하는 아이들처럼 자기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책으로 엮어낸다. 얼핏 보면 책을 낸 저자들이 으레 그렇듯 소중한 저작을 내놓고서 겸손한 태도로 아이들 장난이나 유희 정도로 보아 달라고 하는 말이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선비답게 산다는 것』(푸른역사)에 서문을 쓰면서 마지막 대목에 조희룡의 이 글을 인용했다. 다른 말을 장황하게 할 필요 없이 저술을 출간하는 심경을 그의 글이 잘 대변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독자를 향해 가볍게 읽어 달라는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이지만 더 큰 동기가 있었다.

 조희룡은 틀림없이 이덕무가 한 말을 잘 알았을 것이고,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어 자기 책에 썼을 것이다. 실은 나도 같은 마음이다. 아동들이 동무들끼리 소꿉놀이하는 것을 보면 어른의 눈으로야 비현실적이니 장난이니 아이들이라 그렇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다. 그것이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어른들의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면서 친구와 사귀고 즐거워한다.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다고 보는 것도 어른의 평가일 뿐,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자체로서 즐거운 놀이일 뿐이다. 경직되고 긴장의 연속인 삶에서 소꿉놀이처럼 즐기며 무언가를 하는 것은 큰 행복이다.

 첨단 기술문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세상에서 18세기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는 것이 유년기 소꿉놀이처럼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이덕무와 조희룡의 말이 마음 한쪽에 오래 보관되어 있는 이유가 아마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아마도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수백 년 전 문화와 역사를 지금 시대의 말과 생각으로 풀어내는 것 자체를 즐기는 심경을 잘 설명해서다. 이제는 공부와 저서를 통해 무엇을 성취해 보겠다는 강한 목적이나 사명감에서 벗어나 그 자체를 즐거운 놀이로 여기고 싶다. 또 하나는 어린아이들은 상수리 열매나 대합껍질, 모래나 부서진 사금파리로도 즐거운 시간들을 만들어간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가지고 즐기는 것은 비할 데 없이 귀한 것들이다. 두 분의 소꿉놀이 글은 그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 누구든 자신만의 유년기 소년다운 소꿉놀이가 있을 수 있고, 내게는 저 저작들이 바로 소꿉놀이였다.

안대회 한학자 성균관대 교수

안대회는 1961년 충남 청양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문학에 대한 웅숭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꼼꼼한 고전 읽기와 예리한 분석으로 풀어내는 18세기 사회 톺아보기가 장기다. 조선 후기 한문학이 지닌 감성과 사유의 세계를 우리 시대로 가져와 선조의 삶과 지향을 대중 언어로 다스린다. 현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한국18세기학회 회장으로 있다. 저서 『궁극의 시학-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 『정조의 비밀편지』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18세기의 맛』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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