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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의 수평적 경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합의의정서를 교환하고 19일 폐막된 한국·이란 경제각료회의는 그 정치·경제적 함축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각료회담은 우리가 중동 산유국과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첫 시도일 뿐만 아니라 그 협력의 내용에서도 매우 이상적이고 효율성 있는 제안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원유가 인상파동 이후 극심한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비 산유 개발도상국들의 문제가 세계의 당면과제로 제기되고 있는데도 이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은 아직도 미흡한 채로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산유국은 물론 되도록 많은 자원생산국들과 적극적인 협력체제를 모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 각료회담은 우리 정부가 그동안 끈기 있게 추구해 온 경협 채널 다양화 노력의 한 결실인 동시에 우리 경제의 국제적 경쟁능력의 한 부분이 인정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 회담의 구체적 성과로 나타난 15억달러 규모의 주택건설 참여나 섬유·합판·어업 등 광범한 분야에서 합작 투자키로 합의한 내용은 한마디로 매우 고무적인 것이다.
이런 분야들은 모두 기술집약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들로서 우리가 국제경쟁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는 부문이다.
따라서 이런 부문들은 앞으로도 대외 경협, 특히 중동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개발도상국들과의 협력관계 추진에 전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중동 제2의 산유국으로서 이란은 현재 대규모 경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특히 개발의 애로요인이 되고 있는 인력부족, 기술수준의 저위나 수송·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미비 등을 고려할 때 양국간의 협력 패턴을 상호보완적인 체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지는 많다 하겠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가 크게 기대했던 자본협력이나 원유도입의 지원, 또는 석유화학 합작문제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음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이란은 현재 개발계획에 따른 막대한 투자수요를 안고 있는 데다 석유수입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일·달러의 환 류가 제도화되더라도 큰 혜택을 받기 어려운 우리의 처지로서는 자본협력문제가 대이란 경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므로 앞으로도 계속 협의되어야 할 과제다.
다만 우리로서는 이번 회담이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므로 처음부터 지나친 기대를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관계는 단계적으로 엄정한 경제성에 입각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다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지나치게 인식하여 행여 정부가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경제적 합리성에 소홀할 우려가 없지 않으므로 이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평적 협력관계는 한쪽의 일방적 진출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려우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결코 장기적인 안정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한가지 다행한 것은 산유국 중에서도 이란은 비 산유 개도국들에 대해 원조기금설치를 제안하는 등 호의적인 배려를 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전형적인 개도국간 협력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여타 산유·자원 국들과의 또 다른 채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의 지나친 경쟁이나 물적·인적 덤핑을 적절히 조정하고 규제하는 노력도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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