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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의 이직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은행원들의 이직이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어 금융기관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지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자본 제 경제에서 근로자가 자유로이 전직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보수수준과 근로환경·정신적 스트레스·승진전망을 고려해서 근로자들은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며, 그러한 선택이 여건의 변화로 잘못되었음을 확인했을 때 실력 있는 사람은 미련 없이 전직을 단행한다.
오늘날 은행원들이 전직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서정쇄신·금융부조리 시정이라는 여건변화에 직접적으로 관련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은행원은 부패했고 부조리 속에서 호사한 생활을 하다가 단물이 빠지니까 이직하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보도로 미루어 보아 그렇게 몰아붙일 수 없는 딱한 사정이 내재되어 있어 이직 율이 늘고 있음은 국민경제의 건전한 순환과 성장의 지주라 할 금융기관의 장래를 위해서 깊이 염려해야 할 일일 줄 안다.
우선 금융부조리의 제거가 주로 은행원의 보수를 삭감하고 근로기준법 상 권장하고 있는 근로권의 제반 복지지원을 중단시키는 쪽으로 기울고 있음은 노동행정의 장래를 염려케 하는 일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과거 30년간 이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독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금융기관이 근로자들의 선망의 표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급여수준이 금융부조리의 시정이라는 명분 때문에 2류 기업의 대우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명예와 승진 그리고 공권력 행사의 보람을 바라고 공무원이 된 관리와 비교되는 것은 그 발상자체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이라 할 정년을 몇 해 앞두고서야 겨우 부·지점장이 될 수 있는 금융기관의 1급 직원이 과세전 월 봉급 20만원수준에도 미달되는 상황은 참으로 딱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모든 근로자들이 부러워했던 금융기관의 대우가 이러하다면 노동행정의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또 금융기관을 관공서에 준해서 다루는 제반규제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공무원의 집무자세로 은행을 운영해 가지고 금융기관이 경쟁을 생명으로 하는 기업 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금융 서비스의 본질은 옛날부터「남자기생」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정도다. 이들에게 손발을 묶어 놓고 대우는 하지 말라면서 어떻게 서비스를 하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또 은행원은 현금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잘못해서 손실이 발생하면 변상해야 하는 커다란 위험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이 곤궁하면 견물생심으로 현금에 손대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며 또 항상 위험부담이라는 노이로제 속에서 일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파산의 위험을 안고 있는 은행원에게 위험부담을 위한 비축능력을 주도록 후대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후대라고는 할수 없다.
끝으로 오늘날의 금융기관은 감사원 감독원 국세청을 위시해서 각종기관의 중복 감사 검사 조사에 시달리고 있어 주 업무보다는 보고와 자료제출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가장 일하기 까다로운 직장이 되고 있다. 이제 민간기업보다 월등히 대우가 나쁜 반면, 상전은 많고 일하는 보람도 없는 은행이 되어 가고 있는 금융계의 실정을 직시할 때 은행원이 이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원래 금융업무는 금전을 다루는 특수업무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법률적·경제적·경영적 판단을 즉각적으로 내려야 하는 전문업무인데 은행원의 저질화를 촉구할 때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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