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앙골라」의 독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 10일 하오 4시. 16세기에 새운 구「포르투갈」총독부로부터 마지막「앙골라」수비대 약 1백명이 장갑차 3대를 앞세우고 해안으로 떠났다.
이에 앞서 「칼도소」고등판무관은 5백년동안 「루안다」의 하늘에 펄럭이던 「포르투갈」국기를 내려 자기 팔에 낀 채 「리스본」으로 떠났다.
11일 상오 영시를 기해 있을 「앙골라」의 독립선언을 위한 절차는 모두 끝냈다. 한밤중의 독립식전에는 7천명의 관중이 모였다. MPLA의 당기에 톱니바퀴와 농기구를 넣은 새 국기도 게양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난 13년 동안 끈질기게 벌여온 투쟁 끝에 얻은 독립의 축전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앙골라」인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아구시티니우·네토」MPLA 의장은 회장 뒷면 철망을 넘어서 군인들의 경호를 받아가며 들어왔다. 그리고 독립을 선언한 다음에는 다시 쏜살같이 회장 뒤로 숨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독립을 경축하는 불꽃이 아니라 기관포의 총격들이었다. 이미 「네토」의 MPLA에 반대하는 FNLA와 UNITA의 연합부대가 세 방향에서 「루안다」를 향해 진격해오고 있다. 그 일부는 이 수도의 북방 19km에까지 육박하고있다.
지난 13년 동안의 독립투쟁 중에 1만명 이상의 「앙골라」투사들이 쓰러졌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 3파간의 내전과정에서 죽어갔다.
그동안 3파 사이에서는 수없이 화해의 약정과 휴전조약이 맺어졌었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앞으로도 3년 동안은 치열한 내란을 겪어야 겨우 끝장을 볼 수 있다』고 UNITA의 「사빔비」당수는 예언했다.
그러나 그것도 「앙골라」가 세 동강이로 갈라지고 난 다음의 일일 것이 고작이리라는 게 서방측의 예상이다. 그만큼 내란이 오래 끌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첫째 이유는 그 광대한 영토에 있다. 「앙골라」영토의 넓이는 일본의 3배, 「프랑스」의 2배나 된다. 그리고 어느 한 파도 이를 완전히 통합해서 지배할만한 힘이 없다.
둘째로는 3파가 각기 다른 부족중심으로 형성된 데 있다. FNLA는 고대「콩고」왕국의 후예인 「바곤다」족의 민족운동에 뿌리를 박고 있다.
『칼밖에 없는 12인』이 시작했다는 UNITA는 「앙골라」인구의 38%를 점하는 「오빈분도」족을 대표하는 세력이다.
여기에 겹쳐 「앙골라」의 막대한 지하자원은 각국의 자본과 얽혀있다. 이리하여 MPLA는 소련이, FNLA와 UNITA는 미국이 각각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있다. 여기에 또「포르투갈」 남「아프리카」 「자이르」 등도 한몫 끼고있다. 결국 누구를 위한 독립이며, 무엇을 위한 내란이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앙골라」는 세계 제4위의 「코피」생산국이었다. 「다이아먼드」는 제5위이며, 철, 동광, 석탄생산도 우리가 부러울 정도다. 그 생산이 지금 모두 중단되고 있는 것이다. 「앙골라」의 독립은 새로운 「아프리카」의 또 하나의 비극을 낳고있는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