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노화] 13. 중국의 장수村 난퉁市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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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黃海)로 흘러드는 장강(長江)하류의 남쪽에 상하이(上海)가 있다면 북쪽엔 난퉁(南通)이 있다. 8천㎢ 면적에 인구 7백86만명인 이곳은 1984년 중국의 14개 연안 개방 도시 중 하나에 선정될 정도로 개방되고 발달한 지역이다.

세계 장수촌의 전형적인 지형인 산지도 아니며 또 섬도 아닌 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장쑤(江蘇)성 난퉁이 중국의 6대 장수 지역 중 하나가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12일 1백5세의 왕쑹칭(王松靑) 노인을 찾아 난퉁시 허핑차오(和平橋)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 1층 문에 들어섰다. 王노인은 자녀들과 중국식 카드놀이를 하느라 손님이 온 줄도 몰랐다. 탁자에 놓인 카드패를 집는 동작이 청년 못지 않게 민첩하고 "작은 돈이라도 걸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할 정도로 셈도 빨랐다.

王노인께 단도직입적으로 "할아버지, 오래 사시는 비결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좋은 일만 생각하고 원한 같은 건 기억하지 말아야지." 안경을 쓴 적이 없을 정도로 시력도 좋은 王노인이 지체없이 던지는 답이다.

이번엔 王노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원펑(文峰)촌의 1백2세 저우후이(周惠)할머니를 찾았다. 동생인 저우주쥔(周竹君)도 올해 1백세가 됐다. 周할머니는 "부단히 몸을 움직이는 게 건강에 좋다"면서 연신 염주알을 손으로 굴린다.

'베이징(北京)에 가서 자리 높음을 자랑하지 말고, 광저우(廣州)에 가서 돈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난퉁에선 나이를 자랑하지 말아야 될 정도로 고령자가 많다.

2002년 말 현재 난퉁엔 1백세 이상 노인이 무려 4백23명에 달한다. 인구 1백만명당 1백세 이상 노인이 평균 54명으로 중국 전체 평균 6.4명의 여덟배를 넘는다.

난퉁시 노령협회 회장인 구자허(顧嘉禾)에 따르면 각종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1948년 난퉁의 평균 수명은 32세에 불과했다. 그러나 55년이 지난 현재는 74.18세로 늘어났다.顧회장은 난퉁의 장수 비결로 개인적인 요소와 자연적인 요소, 사회적인 요소 등 세가지를 꼽는다.

◆개인적 요소=먼저 음식과 관련, 난퉁의 첫째 장수 비결은 '일간이희(一干二稀)'에 있다. 즉 점심 한끼는 쌀밥 등을 좀 되게 먹되 아침과 저녁은 죽 등으로 묽게 먹는 것이다. 이는 장수 노인 대부분에게서 나타나는 식습관이라고 顧회장은 말한다.

생활이 어려웠던 시기가 많아 특별 영양식을 먹을 형편이 안됐지만 장수 노인은 대부분 하루 세끼를 충실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식물성 식용유에 사과와 대추.바나나.귤.복숭아 등 과일을 좋아하고 채소로는 배추와 시금치를 즐긴다.

특이한 점은 마시는 물과 관련, 우물물과 수돗물 또는 빗물을 마시는 노인이 많았고 이웃한 장강의 물이나 호수의 물을 이용하는 노인은 적었다는 것이다. 술을 조금 하는 이는 있어도 담배를 하는 장수 노인은 드물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노인들이 아직도 힘이 미치는 한 쉬지 않고 노동을 하고 있다. 난퉁 루가오(如皐)의 천방잉(陳邦英)할머니는 1백5세 나이에도 향(香)주머니를 만들어 시장에 팔고 있는데 '장수 향주머니'로 소문나 수입이 짭짤하다고 한다.

1백세 노인들은 또 대부분 오전 6~7시에 일어나고 보통 오후 8시면 잠에 들며, 특히 83% 이상이 오후에 한 시간 가량의 낮잠을 꼭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연적 요소=난퉁은 장강을 비롯, 3면이 하천으로 둘러싸인 반도 지형으로 최저 영하 4도, 최고 34도를 넘지 않는 온화한 기후를 갖고 있다.

난퉁시 노령공작위원회 리진청(李錦誠)주임에 따르면 겨울에 한두차례 눈이 올까말까 하지만 사계절이 분명하고, 연간 일조시간이 2천1백50시간에 이르며, 강우량 또한 연 1천35㎖ 전후로 무척이나 쾌적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장강 연안에 있으면서도 대규모 공업 단지가 아닌 점 또한 깨끗한 공기 확보에 일조했다. 난퉁엔 난방 설비가 없다. 겨울이 그리 춥지 않기도 하지만 황허(黃河) 이남엔 난방 설비를 금한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이 정책이 난퉁의 공기를 맑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사회적 요소=사회적 요소는 '효(孝)'로 대표된다. 顧회장에 따르면 1백세가 넘는 장수 노인들의 82% 이상이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정이 매우 화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60세가 넘은 저우후이 할머니의 며느리는 周할머니가 좋아하는 눈치를 보인 의자를 사기 위해 시장을 며칠 돌아다녔다. 王노인의 여섯 자녀들은 돌아가면서 아버지와 카드놀이를 같이 한다.

루가오에선 1백세가 넘은 노인에겐 매달 80위안의 영양 보조비를 지급하며 매일 아침 우유를 무료로 배달해주는 등 사회적인 경로 풍토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경로 분위기는 장수 노인들의 시름을 덜고 마음도 편하게 해주는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고 顧회장은 말했다.

난퉁=유상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