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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제빵사 "버터,설탕이 악마는 아니잖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버터, 설탕이 악마는 아니잖아요.”

미국 백악관 수석 제빵사 빌 야세스(60)가 영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그간 참아왔던 속내를 털어놨다. 지난 7년 간 백악관에서 케잌 등 디저트를 책임져 온 그가 사의를 표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산딸기ㆍ배 수플레(계란 흰자를 섞어 오븐에 구워 부풀린 요리) 등을 창안해 인정받던 제빵사였다. 백악관에 입성한 건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7년, 당시 영부인 로라 부시의 부름을 받고서였다.

2009년 버락 오바마 가족이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들어오고부터 야세스는 일종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두 팔을 걷고 아동 건강 캠페인에 나설 정도로 건강식을 챙기는 미셸 때문이었다. 설탕으로 만든 조각 장식이나 쿠키가 가득 담긴 접시는 서서히 백악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침엔 도넛 대신 사과ㆍ케일ㆍ시금치ㆍ생강 등을 재료로 한 스무디를 만들었다. 버터 대신 과일 퓌레(야채나 고기를 갈아서 걸쭉하게 만든 음식), 설탕 대신 꿀이나 아가베 시럽을 사용해야 했다. 과자나 파이를 만들 땐 설탕ㆍ버터를 최소로 하고 통곡물과 과일을 재료로 썼다. “버터ㆍ크림과 ‘일상화된 전투’를 벌였다”고 그는 표현했다.

그런 야세스가 설탕ㆍ버터의 압박에서 해방될 때가 있었다. 외국 정상이 백악관에 초청됐을 때다. 2011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대접할 땐 건포도ㆍ치즈ㆍ사과로 맛을 낸 스트루들(사과 등 과일을 잘라 밀가루 반죽에 얇게 싸서 오븐에 구운 것)를 비롯, 그가 평소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던 설탕과 버터를 듬뿍 넣은 “악마의 케익과 브라우니”를 내놨다. “미셸이 메르켈 부부에게 나를 소개했을 때 그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좋아하더라”고 회상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방문했을 땐 하와이식 가나슈(초콜릿 크림의 하나)를 만들었다. “올랑드가 제빵 전문가란 말을 듣고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야세스는 미셸과 감정적 불화는 없다고 했다. “미셸은 내게 가르치듯 지시하지 않았다. 항상 유머러스했고 선의를 가지고 날 대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오면서 몸에 밴 ‘달콤한’ 습관을 버려야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또한 감추지 않았다. “크림과 버터, 설탕과 계란을 악마로 만들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임에 대해 “달콤쌉싸름한 결정”이라고 표현했다. 6월 백악관을 나서면 뉴욕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요리를 가르칠 계획이다.

미셸은 야세스의 사임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슬프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그는 수석 제빵사로 국빈 방문 등 행사 때마다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며 “다음 세대를 위한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데 힘쓴 동반자로서 업적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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