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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7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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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음은 전택보·강신호·김상준씨 등 3명의 한국 대표단이「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5차 「유엔」협회 세계 연맹 총회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본사 주섭일「파리」특파원이「모스크바」의 「로시아·호텔」∼「파리」∼서울을 잇는 국제전화로 중계해온 우리 대표단의 총회 참가기다. <편집자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유엔」협회 세계 연맹 제25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대표단이 동경 「하네다」 공항을 떠난 것은 지난1일 하오 3시쯤이었다. 회의기간이 1일부터 6일까지니까 우리 대표는 이미 회의가 시작한 다음 출발한 셈이었다.
9월 중순부터 「모스크바」행을 서둘러 29일엔 동경에 가서 주일소련 대사관에 「비자」발급을 신청했지만 결국은 발급이 늦어져 개막식을 못 보게 되었다. 동경 「오오꾸라·호텔」에서 「비자」가 나오질 기다린 이틀 동안 우리는 정말 초조 속에서 밤을 지새웠었다. 「비자」만 나으면 아무 때라도 떠날 수 있도록 완전 대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의 시작날인 1일 아침에는 우리 대표단중의 김상준씨(「유엔」한국 협회 사무국장·서강대 교수)가「모스크바」협회 본부에 전화를 해서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랬더니 주일 소련 대사관 직원은 「모스크바」로부터 무슨 연락을 받았는지 그날이 휴무일 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출근해서 우리들의「비자」신청 일을 봐주었다.
그밖에도 우리는 JAL측의 호의가 없었더라면 소련에 입국할 수 없을 뻔했다. 원래 소련입국은 「호텔」예약과 체재비를 선납하지 않으면 「비자」를 받기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JAL측이 한국대표단의 「호텔」비용을 대납해주었기 때문에「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가뜩이나 회의에 늦었는데다 출발직전에는 「하네다」공항 관제탑에 불이 나는 바람에 JAL기는 4시간인가를 연발해서「모스크바」에는 1일 밤 8시쯤(현지시간) 에야 도착했다. 비행기가 늦었음에도「모스크바」의 「세레네피에보」국제공항에는 2명의 소련인 안내원이 2대의 승용차를 가지고 나와 우리 대표단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들은 선물용으로 꽤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내원 덕택에 무사 통과되었다.
우리가 든 「호텔」은 지난번 한국영도 선수단이 들었던 「로시아·호텔」로 방이 모두 6천개나 된다는 으리으리한 건물이었다. 2층에는 식당이 있어 우리는 「쿠폰」을 받아 저녁식사를 마쳤는데 웬일인지 밤 11시면 모두 불을 꺼버리는게 서구와는 좀 다르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해 주는 곳이었다.

<시민들 검소한 차림>
1일에는 개막식이 있었고 밤에는 각국대표들을 음악회에 초대했다는데 우리는 2일부터 회의에 참석했다.
우리가 회의장에 도착해보니 우리 좌석이 미리 준비되어있었던 모양으로 「알파벳」순서로 좌석과 공식 국명명패가 모두 정해져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 국기는 어느 나라 것도 게양되지 많았다.
회의장은 「호텔」에서 걸어서 약 15분 걸릴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대표들을 위한 「버스」가 매일 아침 「호텔」에 와서 모두 함께 회의장으로 가곤 했다. 회의장은 노총회관이라고 부르는데「모스크바」에서 회의장으로 자주 쓰는 곳이라 했다.
장식이 무척 화려하고 회의 장 밖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시선이 마련된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회의장으로 만든 건물인 것 같았다.
이번 회의는 「유엔」안에서의 세력구조를 분석하고 국제긴장을 완화하는데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유엔」협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토의했으며 한국대표단으로서는 우리가 「유엔」의 지지를 더욱 많이 획득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이 회의에서의 공용어는 원래 영어와 불어로 되어있는데 장소가「모스크바」인만큼 소련어도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전택보씨는 단장이기 때문에 야간회의에 남아서 의장선거에 참석했다. 의장에는「룩셈부르크」대표가, 명예 의장 영국대모가 뽑혔다.
대체로 총회 분위기는 한국의 입장에 호의적이었으며 소련인들도 우리 대표를 부드럽게 대해주었다.
이번 「모스크바」방문에서는 회의「스케줄」이 바빠 관광은 별로 할 수가 없었다.
원래 「비자」만료일은 회의가 끝나는 6일로 되어 있어 폐막식도 못보고 「모스크바」를 떠날 뻔했다가 간신히 주최측의 주선으로 하루가 연장되었을 정도였다.
우리 대표단에는 「니콜라이」와「보리스」라고 부르는 두 소련인 안내원이 붙어있어 온종일 친절하게 안내와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설명해 주는 법이 없고 꼭 우가 물어야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호텔」에 와서 식사도 함께 하고 저녁 늦게까지 쭉 같이 다녔다. 이들 중 한사람은 일본서 동양학을 공부해 일어를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이들과 영어로 의사를 소통했다. 「모스크바」의 거리는 넓고 깨끗한 인상이었다. 2년 전「레닌그라드」를 방문했던 전 단장은 「모스크바」가「레닌그라드」보다는 화려하거나 웅장한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검소하고 깨끗한 옷차림이었다. 젊은 남녀의 「아베크」도 눈에 띄고 표정도 많이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가 기대했던 총제 사회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다음 회의 제네바서>
「모스크바」의 날씨는 상쾌할 이 만큼 하늘이 높았지만 서울보다는 무척 싸늘했다. 마치 11월의 날씨 같아 우리는「바바리·코트」를 입고 다녔다. 「모스크바」의 식사도 서구에서와 비슷하게 그저 먹을 만 했다. 다만 양이 좀 적지 않나 싶었다.
4일 밤에는 「크렘린」궁 안에 있는 대회궁전에서 「발레」를 본 것이 퍽 인상에 남는다. 객석이 6천개나 되는 대 극장이었고 「발레」단은 그 유명한 「볼쇼이·발레」단이었다. 『조그만 말(마)』이라는 제목으로 3시간 동안이나 공연되었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왔다. 또 반주를 하는 「오키스트러」도 주자가 1백30여명이나 되는 「모스크 바·필하모닉·오키스트러」라고 했다.
「발레」를 공연한 연주장은「발레」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각종 집회도 열고 연극 등도 공연한다고 한다. 「크렘린」은 화려하다는 인상이었으며 관객은 소박하고 깨끗하게 차리고 있었다,
「모스크바」거리는 차량이 서울보다 복잡하지 않다는 인상이나 「레닌그라드」보다는 차가 붐비고 있었다.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이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되겠으며 시민들은 서구보다 무척 검소한 복장을 하고 있다.
검소하다는 말은 형편없는 복장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분수에 맞게 입고 있다는 말이며 모두가 단정하게 보이는 것이 인상깊었다
우리들은 소련에 들어갈 때『오늘의 한국』이란 책자를 가지고 가서 각국 대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한국을 자세히 알고 있었고 한국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7일간의 회의가 무사히 끝나고 각국 대표들은 2년 후「제네바」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 동안 친숙해진 소련인 안내원도 다시 또 만날 수 있기를 빈다』면서 작별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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